[송수정의 사진] 사진 없는 사진
입력 2011-07-28 18:09
유진 스미스는 휴머니즘 사진가, 포토에세이의 정점을 일궈낸 사진가로 불린다. 그는 한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으로 이야기 구성이 가능한 사진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자신이 미화되는 것을 원치 않아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렸던 슈바이처를 설득해 그의 아프리카 의술 활동에 관한 휴먼드라마 한 편을 완성시켜낸 일화로도 유명하다.
유진 스미스는 고등학생 시절 지방 언론사 사진기자 활동을 거쳐 20대에 이미 ‘뉴스위크’ 사진기자가 될 정도로 탁월한 감각을 지녔지만 깐깐한 성미로도 유명했다.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라는 ‘뉴스위크’의 요구를 거절해 해고당했고, 친정이나 다름없는 ‘라이프’지와는 사진 편집에 대한 의견 차이로 늘 티격태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의 총격으로 뇌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일본 미나마타 시의 수은중독 문제를 다룬 ‘미나마타병’은 그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미나마타의 칫소라는 질소비료 공장이 메틸수은이 함유된 폐수를 정화처리 없이 바다에 버리면서 발생한 수은 중독은 주로 중추신경에 문제를 일으켜 손발의 움직임을 마비시키고 경련을 일으키다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이상 증세가 발견된 것은 1950년대였지만 정부가 재해로 공식 인정한 것은 1968년일 만큼 길고 상처 많은 싸움이었다.
유진 스미스는 71년부터 3년 동안 이 마을에 머물렀다. 일본인 아내 아일린과 함께였다. 미나마타병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려는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은 절박했다. 그들의 위기와 간절함을 한 번에 보여줄 만한 사진이 없어서 고민하던 유진 스미스를 도운 건 료코 우에무라였다. 그녀의 딸 도모코는 뱃속에서부터 수은 중독에 노출된 장애아였다. 유진 스미스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의 문제가 너무 선정적으로 다뤄질까봐 걱정하던 료코는 도모코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담기 위해 목욕 장면 촬영을 제안했다.
1971년 12월의 추운 겨울, 일본식 욕조에서 몸이 마비된 딸이 엄마에게 안긴 채 목욕을 하고 있는 ‘목욕하는 도모코 우에무라’라는 사진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훗날 일본의 피에타상이라는 수식까지 붙은 이 사진은 1972년 6월 ‘라이프’지 특집 기사로 처음 소개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유진 스미스는 칫소사의 공격을 받아 한쪽 눈을 실명했다. 도모코는 이 사진 촬영 후 6년여가 지난 77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유진 스미스는 그 1년 후 ‘미나마타병’을 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남긴 채 운명했다.
그러나 이토록 숱한 이야기를 담은 이 사진은 더 이상 인쇄매체에서 만날 수 없다. 도모코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되던 해에 그녀의 유족들이 이제는 그녀를 편히 쉬게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족들은 도모코의 사진으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다는 풍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진 스미스의 아내는 도모코의 유족들을 찾아가 해당 사진 저작권을 유족에게 넘겼다.
유진 스미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눌렀는데, 이제 다시 그 사진을 말로 설명해야 한다니 상당한 역설이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이 아닌 인터넷에서는 검색어만 치면 사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현실 또한 역설이기도 하다. 비극적인 대상을 다룰 때 사진가들은 ‘사진 속 주인공은 자신이 어디에 소개되는지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시달린다. 비록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지라도 유통기한을 둔다는 건 참 성숙한 결정이다. 이 어려운 결정을 통해 아일린은 남편을 진정한 휴머니즘 사진가로 완성시켰다.
<사진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