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폭우’ 그들에게는 다 그렇고 그런 날이다… 강제퇴거 앞둔 서울역 노숙자 르포
입력 2011-07-28 20:04
이틀간 472.5㎜의 비가 서울을 때렸다. 26일 오후 3시에 톡톡, 떨어지기 시작한 비는 밤부터 번개를 동반했다. 땅에 동심원을 그리며 내리던 비는 도로를 무섭게 잠식해 갔다. 다음 날 출근 차량은 불어난 물 위를 뱀처럼 기어다녔다. 일부 지역에선 횡단보도가 깨져 빗물이 솟구치고, 전기가 끊어지고, 토사가 집을 덮쳤다. 비는 잔인했다.
서울역에도 비는 세차게 내렸다. 26일 서울역을 빠져나온 승객들은 갤러리아백화점 서울역점 가판대에서 우산을 사갔다. 가판대엔 금세 사람이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은 우산 대신 가방을 머리 위에 이고 역사 바깥으로 황급히 뛰쳐나갔다. 친구나 가족을 만날 예정인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내린 비에 당황하며 전화를 해댔다. 걱정스러운 얼굴들이 서울역을 채웠다.
동요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마른 장작처럼 건조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이 습한 승객들의 소란 속에서도 검은 점처럼 곳곳에 박혀 있었다. 노숙인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거지, 부랑자, 노숙자라고도 부른다. 홍수가 날 만큼 비가 퍼붓는 날이나,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나,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나, 풀 향기 나는 바람이 부는 여름날이나 이들에게는 다 그렇고 그런 날이다. 날들의 차이가 있다면, 발바닥에 무좀이 새하얗게 돋다 못해 발이 퉁퉁 부을 만큼 찌는 여름날과, 발이 얼다 못해 썩어 버리는 살벌한 겨울날, 그리고 그 사이의 중간 날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그렇고 그런 365일을 쳇바퀴처럼 돌고 돈다. 서울역과 지하도, 인근 쪽방촌에서. 이들을 만났다.
어디 사세요?
코레일은 다음 달부터 노숙인을 역사에서 강제 퇴거 조치하기로 했다. 음주·폭력·욕설로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노숙인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역에 사는 노숙인은 300여명이다. 어디로 갈 건지 노숙인들에게 물었다.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 질병 등을 앓고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았다.
25일 노숙인 유철동(53)씨가 서울역 광장을 지나갔다. 이가 빠져 발음이 새는 유씨는 말이 어눌했다.
-다음 달, 어디로 갈 계획인가요?
“가라고 해도 안 간다. 여기서 14년을 살았다. 나가란 말은 수없이 들었다. 대통령님이 다 잡아들이라 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코레일이 퇴거 명령을 내린 거 아닌가요, 영등포역으로 가겠다는 분도 계세요?
“그런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영등포역은 여기보다 깽판 치는 사람이 많아서 싫다. 서울역은 영등포역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유씨는 경기도 포천의 한 공장에서 일했고, 그 공장이 망한 이후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며 지내다가 허리를 다쳤고, 그러다가 ‘이 바닥’에 왔다고 했다. 유씨는 ‘반숙’(건설 노동자로 일할 때는 쪽방촌에서 지내고 돈 떨어지면 서울역에서 자는 주거 형태)을 한다.
이날 오후 서울역 광장에선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한 무리에게 다가갔다. 4명이 모인 무리 중 팔에 문신을 한 노숙인도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노숙인이 코레일을 비판하자 옆에 앉은 노숙인이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 “형님이 말하고 있잖아!” 둘이서 옥신각신하더니 동생뻘 되는 노숙인이 무턱대고 내게 화를 냈다.
“XX년아, 니가 예수냐?” 이 노숙인은 인근 무료 급식소인 ‘따스한 채움터’까지 따라오며 욕을 해댔다. 씩씩거리며 좇아오더니 지나가는 여자 어린이와 한 여성에게도 욕을 해댔다. 어린이 머리에 손을 대자 그 여성이 몹시 화를 냈다. “여기 이상한 사람들뿐이야!”
26일 서울역을 다시 찾았다. 비가 거칠게 내렸다. 질퍽거리는 갤러리아백화점 정문 앞에 홍재일(48)씨와 홍수명(여)씨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시계는 오후 11시30분을 가리켰다. 헝클어진 머리, 시커먼 얼굴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회색 옷은 언제 빨았는지 얼룩덜룩하고 발은 씻지 않아 허옇게 피어 있다. 손톱, 발톱 끝에 시커먼 때가 껴 있다.
이들 사이로 승객들이 바삐 지나가며 우산을 펼치고 계단을 내려갔다. 다들 집이나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서초, 강남 가실 분!” “제주도 빼고 다 갑니다!” 서울역의 택시 기사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장거리 손님을 낚고 있었다. 서울역의 밤은 시끌벅적했다.
조용히 입을 다문 홍재일씨 옆에 다가가 앉았다. 언제 다쳤는지 오른쪽 눈이 감긴 채 문드러져 있다. 여자와 남자는 서울역에서 만나 1년쯤 동거했고 곧 결혼할 거라고 했다. 이들 옆으로 서울 장수 막걸리 한 병과 빵 한 개, 나무 목발이 놓여 있다. 홍재일씨는 한마디, 한마디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
-8월에 어디 가실 거예요?
“(홍수명씨를 가리키며) 이 아가씨하고, 같이, 살, 거예요. 내 고항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어머니, 집에, 가요. 천구백구십일년, 교통사고, 병원, 입원. 6개월. 식물인간. 신설동 병원. 나는, 서귀포경찰서, 중문파출소, 순경, 이었습니다. 4급, 장애인, 입니다. 꽃동네, 1년, 살았습니다.”
-가족 없어요?
“마누라, 이혼, 다쳐서, 이혼, 했어요. 마누라, 이름은, 김○○.”
-복지 시설 안 가세요?
“나는, 여기, 편해. 좋아.”
-어쩌다 다쳤어요?
“휴가 때, 뺑소니, 차에, 치여서. 식물인간.”
옆에 앉은 홍수명씨에게 말을 걸자 노숙을 하게 된 경위와 홍재일씨를 만나게 된 사연을 말했다. “이 양반, 만나고 좋아. 안 적적해. 늘 웃어. 나 만나서 황홀하대.” 둘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도 행복한 신혼부부처럼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그러나 여자 역시 대체로 종잡을 수 없는 얘기를 반복했고 내용도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과거로 왔다 갔다 했다.
이때 또 다른 남성 노숙인이 술병으로 보이는 물건을 검정 비닐 봉투에 담고 다가왔다. 그가 여자에게 말했다. “언니가 나 좀 도와줘야겠는데.” 술을 마시려고 하니 자리를 비켜 달라는 말투 같았다. 선하게 웃던 홍재일씨는 순간 여자에게 화를 냈다. “가! 저리!” 여자는 화를 내며 일어났다. “제주도 안 가!”
이들의 사랑은 10대들의 불장난보다 위태로워 보였다. 노숙인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노숙인 사회
서울역 택시 정류장에 아기를 안은 한 엄마가 내려 KTX 승차장으로 향했다. 아기는 꽃무늬 하얀 옷을 입고 엄마 품에 안겨 순하게 잠을 잔다. 아마도 그 아이는 살아가면서 하나씩 더 소유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무심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노숙인은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노숙인은 시간이 흘러도 남루한 옷 한 벌 걸칠 뿐이다. 무산자(無産者)다.
노숙인은 또 인간관계의 무산자다. 처음 만난 노숙인과 술 한 잔에 둘도 없는 가족이 됐다가 틀어지면 싸우고, 복지시설에 입소했다 나와 또다시 서울역에서 만나면 친구가 된다. 가족도, 친구도, 소속된 커뮤니티 하나 없이 점처럼 떠도는 그들의 삶은 술에 중독되고 정신질환에 걸리기 쉽다.
노숙인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의 신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화일 뿐이다. 거의 모든 노숙인은 더 이상 떠밀려갈 데가 없는 끝자락까지 온 사람들이다. 거주지를 잃어버리면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없다. 빈곤의 덫은 이들을 놓지 않는다.
여행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막차마저 끊어진 새벽. 도시의 바퀴벌레처럼 노숙인이 하나둘 몰려 서울역과 인근 지하도를 점거한다. 6, 7번 출구 근처에선 노숙인 60명이 나란히 누워 눈을 붙인다. 등산용 침낭이나 때가 낀 이불을 깔고 잔다. 아무것도 없으면 종이 박스 위에서 잠이 든다.
노숙인 사회에도 계급은 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뒤편 구름다리에 사는 이들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이다. 이들은 널빤지로 골조를 만든 1.5평 집을 짓고 산다. 박스로 널빤지를 덮고 그 위에 다시 비닐을 씌운다. 장마철에도 비가 새지 않는다. 이 조그만 ‘박스 집’ 안에 모기장을 치고, 옷가지도 나란히 정리해 놓는다. 이들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다.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질환자는 없다.
구름다리에서 한 노숙인을 만났다. 이틀간 인천의 복지시설에 입소했다 26일 구름다리로 돌아왔다. 손목엔 시계를 찼고 복지시설 이름이 적힌 ‘노스페이스’(등산복 브랜드) 흰색 티셔츠에 청색 반바지차림이었다.
“노숙인이라도 우리는 깨끗이 씻어. 몸도 성하고. (복지시설) 가서 방바닥도 닦고 아픈 사람들 오줌도 받아내고 열심히 살았어. 거기 관리자가 자꾸 나랑 그 사람들이랑 같이 취급해. 내가 시설 규칙을 어떻게 알아? 모르는 날 보고 자꾸 뭐라 하고. 거기 오래 터를 잡은 노숙인들이 새로 들어온 날 안 좋게 보는 거야. 이틀 동안 몸이 아니라 정신이, 말도 마, 진짜 힘들었어. 내가 간다고 했는데 안 붙잡아, 아무도. 나는 새처럼 살래. 모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이 노숙인 옆으로 짓다만 ‘박스 집’이 보였다. 두 시간이면 완공할 수 있지만 널빤지를 구할 돈이 없어 공사는 중단됐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이곳에서도 이루기 쉽지 않다.
구름다리 아래의 노숙인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정신질환과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로, 가장 많다. 두 번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쪽방과 노숙생활을 번갈아 하는 노숙인과 마지막으로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일하는 노숙인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의 노숙인은 대부분 범죄 전력이 화려하며 여럿이 어울려 서울역 광장에서 술을 마신다. 이곳에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된다.
서울역에는 하루 세 끼 식사, 간식을 주는 무료 급식소와 진료소, 노숙인 지원센터가 밀집됐다. 이곳에선 적어도 노숙인이 굶어죽을 염려가 없다. 코레일의 강제 퇴거 방침에 따라 서울시는 ‘노숙인 카페’를 만들고 최장 4개월간 월세 자금을 지원한다는 대안을 마련했다. 노숙인들의 서울역 퇴거를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인근 빌딩의 경호를 맡고 있는 한 보안팀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역에서 이 사람들 쫓아내봤자 어딜 가요? 지하도로 몰리지. 큰 일 났어. 내 업무만 많아지는 거야.”
지하도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롯데마트 주차장 앞에서 빨간 반팔 티셔츠를 입은 한 노숙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온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았다. 세찬 비도 멈추지 않았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