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라,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 저자, 여성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

입력 2011-07-28 21:19


지난 2월 잠비아 출신 여성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42)의 ‘미국이 파산하는 날’(중앙북스·원제 How the West Was Lost)이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반응은 ‘터무니없다’로 요약된다. 비판은 300여쪽(한국어판 기준) 저서의 마지막 8쪽에 집중됐다. ‘30년 뒤 경제전쟁 시나리오’를 예측하면서 모요는 중국 등 부상하는 신흥국에 맞서기 위해 미국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상을 기록한 미국의 국가부채는 연말이면 올해 GDP 대비 100%를 넘어선다. 빚내서 빚을 갚는 돌려막기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 부국 미국은 아이슬란드나 그리스가 아니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마음껏 찍어낼 수 있는 달러 공장 미국에 부도라니. 적어도 이 부분에서 독자 반응은 조롱에 가까웠다.

모요는 지난 22일 본보와의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올 초 내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니 말도 안 된다. 웃기는(ridiculous) 얘기’라고들 했다. 5개월도 지나지 않은 현재 미국의 정치상황을 보라. 지금도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나”라고 되물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증액 협상시한(8월 2일)이 4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힘겨루기 정도로만 여겨졌던 미국의 디폴트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하나의 가능성으로, 엄중한 현실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상상 못했던 일이다. 그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미국의 디폴트, 중국이 떨고 있다

물론 그녀 주장은 ‘디폴트를 해야 한다’보다는 ‘해야 한다면 할 수 있다’에 가깝다. 만약 미국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한다면 가장 두려워할 이는 누굴까. 모요의 답은 “중국”이다.

지난 10년 부채버블을 일으킨 미국인의 쇼핑축제는 미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인 중국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중국의 외환보유액 2조 달러 중 82%는 달러 자산이다. 중국은 왜 미국에 선뜻 거금을 꿔주는가. 여기에 세계화 시대 차이메리카(차이나와 아메리카의 합성어)가 작동하는 원리가 숨어 있다.

모요는 “중국이 미국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판매업자가 구매자에게 물건 살 돈을 대주는 것과 같다. 일종의 판매자 금융”이라며 “중국 공장을 돌아가게 하고 수백만명의 중국인을 먹여 살려온 건 미국 소비자였다. 그건 중국 정치권의 대단한 성취”라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이 파산하면 고통 받는 건 미국만이 아니다. 미국에 돈을 빌려주고 중국 물건을 팔아 고용을 유지해온 중국의 발전전략 역시 타격을 받는다. 미국이 디폴트를 무기로 벼랑 끝 전술을 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기억할 일은 있다. 벼랑 끝 전술의 목적은 적과 함께 벼랑에 떨어지는 게 아니다.

모요는 “오해가 없길 바란다.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해야 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디폴트는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미국이 부도가 나면 도대체 지구상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그건 재앙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건 중요하다. 미국은 (디폴트 선언을 통해) 예상 밖의 경제적 옵션을 쥐게 될 수도 있다.”

그녀가 말하는 미국 파산 이후의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다. “주식 시장은 무너지고 달러는 휴지조각이 되고 세계는 앞다퉈 미국을 비난한다. 하지만 (비난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는 다시 미국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설 것이다. 미국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한국은 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가

첫 번째 책 ‘죽은 원조’(원제 Dead Aid) 이후 그는 친(親)중국적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서구의 원조가 아프리카를 의존적으로 만든 데 반해 중국의 투자는 아프리카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는 그녀 주장은 중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2009년 아프리카 방문에서 그녀의 책을 언급했다.

두 번째 저서 ‘미국이 파산하는 날’에서도 중국의 성공은 미국의 실패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미국은 지난 30년간 파국을 향해 어떤 실수를 반복해왔는가. 모요는 미국 자본이 철도 공장 대신 주택 같은 비생산적 자산에, 질 좋은 노동력은 교사 엔지니어 대신 연예인 같은 허황한 직업에 몰렸다고 지적한다. 거금을 들여 개발한 첨단기술은 눈 뜨고 중국에 도난당했다. 그 사이 중국은 공학자를 배출하고 철도를 건설하고 기술을 훔쳐갔다. 결과는 미국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이다.

모요의 이런 극단적 분석은 공감과 함께 격렬한 비판도 불러왔다. 빈부격차, 인권, 환경오염 등 중국이 당면한 문제를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맞다. 중국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고 많은 사람이 잘살게 됐지만 중국에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다만 내 책은 중국이 아니라 서구 경제의 실패에 관한 것”이라며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의 조건인가. 경제학은 그렇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역사를 살펴보라. 미국과 영국이 경제적으로 패자가 된 것이 민주주의 때문인가. 지난 30년간 인도와 중국이 성장한 이유가 그들의 민주주의 때문인가. 나는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조차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중앙집권식 경제시스템에서 애플 같은 창의적 기업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에도 “그런 질문을 던질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말했다.

“한국 같은 중진급 국가에 중요한 건 창의적인 기업, 즉 애플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정책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은 어떤 기업이 실패했을 때 사회가 비난하지 않는다. 한국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달라져야 한다. 기업을 세워 때로 성공하고 때로 실패하는 게 용납되는 사회,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 책 ‘죽은 원조’를 낼 당시만 해도 모요는 경제학계는 물론이고 서구 언론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저자였다. 첫 책은 대단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모요는 단박에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 학계 명사가 됐다. 두 번째 책에 대한 관심 역시 호평과 비판이 뒤섞이긴 했지만 열렬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와 일간 가디언 등이 리뷰를 실었고, 영국 BBC와 미국 PBS는 차례로 모요를 인터뷰했다. 첫 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6위, 워싱턴포스트 4위, 월스트리트저널 2위로 데뷔했으니 독자 반응도 좋았다. ‘죽은 원조’에 이은 연타석 안타였다.

쏟아지는 관심의 이유를 묻자 모요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내 말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늘 진실만을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책에 주목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도 내가 말하는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알고 있지만 정치적 이유 때문에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그녀가 1인당 GDP가 1000달러를 조금 넘는 아프리카 빈국 잠비아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사와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미모의 여성학자라는 사실이 인기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담비사 모요(Dambisa Moyo)=1969년 잠비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순수 아프리카인. 세계은행과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의 날선 논쟁으로 유명한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저술활동 등을 하고 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