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약국에 가면 ‘위로’가 있다… ‘심야약국 24시’ 조제실서 바라 본 세상풍경

입력 2011-07-28 18:05


심야약국을 찾는 사람들

27일 0시. 30대 남자가 약국 문을 밀고 들어왔다. 남자는 어깨를 흠뻑 적신 빗물을 털지도 않은 채 물었다. “여자가 아파요, 목 따가울 때 먹는 약 있어요?” 남자가 위장장애 없는 약을 받아들고 급하게 돌아나가려는데, 밖에서 벼락이 두 번 내리쳤다.

0시15분. 분홍색 우비 차림의 40대 여성이 마스크를 한 채로 “허브차요”라고 말했다. 보통 체격의 이 여자는 약사로부터 허브차 티백 박스를 받아 들고 돌아갔다.

0시20분. 세 시간 전에도 술에 취해 소란 피우고 간 장 모(48)씨다. 다짜고짜 사우나 갈 돈 5000원을 빌려 달라는 장씨. 약사는 “꼭 갚아” 하며 선선히 돈을 줬다. 7월 들어 11만원을 빌려갔다. 그 사이 다른 남자가 조용히 위청수 한 병 마시고 돌아갔다.

0시25분. 안경 낀 젊은 여성이 들어와 6개월 된 아기에게 발라 줄 모기약을 찾았다.

0시30분. 마른 체격의 중년 남자. “아줌마가 일을 해서 여기가 부어버렸어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데.” 다리를 들어 종아리부터 발목까지 손으로 가리켰다. 약사가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그 남자는 우황청심환이라도 달라며 사갔다.

오전 1시. “찰칵.” 보안장치가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 이제부터는 벨을 눌러야만 약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 비가 퍼부었다. ‘약이 필요하신 분은 벨을 누르세요’라고 적힌 종이가 유리문에 붙었다.

1시12분. “딩동.” 지구대 순찰대원이다. 50대. 작은 무궁화 한 개. 경위다. 그는 체력훈련 때 무릎을 다쳤는데, 지구대 뒤 배드민턴장에서 배드민턴을 치다 그만 증세가 악화됐다고 말했다.

1시55분. 젊은 남자가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저희 아버님이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거든요. 약간 아려가지고.” 약을 받아 든 남자가 말했다. “응급실을 찾아갔더니 약을 안 주더라고요. 검사를 다시 받아야 된다고 그러는 거예요. 검사를 받아서 아프게 된 건데 어떻게 또 검사를 받아요.”

3시쯤 약국 전등 스위치 세 개 중 두 개가 꺼졌다. 그러나 약국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20분 뒤 오줌소태가 급해 찾아온 부부, 50분 뒤 소화불량 때문에 찾아온 30대 남자, 3시간 뒤 기침가래약을 요구한 남자.

6시부터 8시까지 세 차례 “딩동”. 일 나가는 30·40대 동네 주민들이었다.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주무시는 데 미안합니다.” 피로회복제, 감기약, 소화제를 각각 사갔다.

심야약국을 지키는 사람

약사 김유곤(51)씨는 ‘바른손약국’(부천시 괴안동 130)을 24시간 운영한다. 약사회의 심야영업 철회방침 이후에도 24시간을 고수하는 1인 약국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김 약사는 이날 오전 8시부터 9시15분까지 잤다. 평소 같으면 목욕탕 갈 시간인데 잠이 들어 지하 1층 다방 옆 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만 감았다. 두유에 미네랄 셰이크 타 먹는 아침식사는 생략. 다시 하루가 시작이다.

이 생활이 벌써 373일째다.

하루 일과는 두어 시간 잠자고, 목욕 한 시간 하는 것 빼곤 종일 약 짓고 약 주는 일로 채워진다. 잠이나 목욕을 포기하는 날도 부지기수다. 김 약사의 집은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일요일 오후 아내와 4년생 치와와 ‘프린스’를 만나러 잠깐 집에 들렀다 오는 것 빼곤 약국에서 먹고 잔다. 얼마 전 캐나다와 필리핀에서 공부하는 두 딸이 아빠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편지를 보내왔다.

그런데도 심야일지 기록하며 뿌듯해하는 자신이 대견스럽다. 영락없는 ‘응급실’ 체질 같다고 자위한다.

지난 1년여간 심야에 약국을 찾아왔던 사람들을 돌이켜보면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벨을 눌러 문 열어줬더니 식칼을 옷 속에 숨겨뒀던 청년(3만원을 쥐어 주며 다독거려 보냈으나 여죄 발견돼 사흘 뒤 경찰에 체포)부터 시작해서 새벽에 여자친구가 임신했을까봐 걱정된다며 찾아온 대학생, 심야약국에 대해 소상히 물어보고는 자신은 공무원인데 고마운 생각이 든다며 제일 비싼 콘돔을 사 간 남자, 괜히 불안하고 초조하다던 80세 할머니, 깨진 유리창에 허리며 손가락이며 베인 상처가 깊은데도 응급실 안 가겠다던 중국동포 청년까지. 사연은 달랐지만 약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김 약사는 한때 서울 서초동에서 약국을 운영했다. 신혼여행 기간에만 잠시 맡아 달라던 대학 동기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게 그만 19년째 부천에 눌러앉았다. 심야약국 열어 달라는 약사회 부탁에 시범사업 기간이라는 6개월만 해야지 하고 시작했다가 1년이 넘었다.

오후 1시20분. 동네 약사들과의 점심시간이다. 메뉴는 삼계탕.

“70년대 초만 해도 약사가 숙청 대상 7호였어요. 자본가라고. 수입도 일반 월급쟁이보다 많았지, 그때는.”

약사면허 북북 찢어버리고 안경점하는 친구, 한국화이자 다니다 약국하면 돈 천(1000만원)은 쉽게 버는 줄 알고 개업했다가 후회한 친구 이야기도 나왔다. 그렇지만 정년이 없다는 거 그거 하난 좋더라는 말에 다들 허허 웃고 말았다. 그러다 김씨의 심야약국 얘기가 나오자 한 마디씩 거든다. “말리고 싶죠. 뭣보다 건강이 많이 상했어요.” “종교적 신념으로 버티는가 봐요.” 자정이 지난 뒤 매출이라고 해봐야 10만∼20만원 안팎. 원가를 뺀 수입은 얼마 안 된다는 계산이 쉽게 나온다. 김 약사는 그저 웃기만 했다. 20여분 만에 국물까지 훌훌 마셔버린 약사들은 뿔뿔이 각자의 약국으로 흩어졌다.

괴안동 사람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면 방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이 동네엔 젊은 부부와 3D업종 종사자, 독거노인이 많다. 몇 년 사이 외국인도 부쩍 늘었다.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시집온 여인들. 괴안동에서 잘 되는 병원은 소아과. 홈플러스 1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유아복 할인매장이 있고, 지하 1층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자 장난감 문구 매장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아이들이 많은 동네다.

이 동네 사람들 그런데 약을 참 좋아한단다. 그중에도 많이 찾는 건 피로회복제.

26일 바른손약국에 종일 있어 보니 그 말이 맞겠다 싶었다. 하루에 두세 번 피로회복제를 들이키는 식당 주방장 할머니. 오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10여년째다.

“비가 다 온 줄 알았는데. 왜 이래요. 하늘이 노망 들었나 진짜.” 뱃살이 두둑한 할머니는 큰 체구로 의자에 풀썩 앉았다. “피로회복제 줘 봐요.”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어느 새 박카스 한 병을 꺼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약국 옆 새마을금고 여직원은 근무시간 도중 박카스 한 박스를 사갔고,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이라는 여자는 “너무 피곤하다”며 1만2000원짜리, 그 약국에선 제일 비싼 피로회복제를 집어 들었다.

한 여학생은 박카스를 잔뜩 사들고는 “시험이라서 밤새야 돼요”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고는 하는 말, “잠이 안 들게 하는 약은 없나요?” 그런 약은 없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남자아이. 비타1000을 사 달라고 엄마한테 졸랐다.

얼마나 피로회복제가 많이 팔리는지, 모 다국적 제약회사에선 상반기 자사 피로회복제 판매 전국 1위 약국에 꼽혔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피로한 사람뿐인가. 속 쓰린 사람들도 한참 다녀갔다.

갑자기 목구멍부터 명치끝까지 ‘쏴아’ 쓰리다는 중년 남성은 급하게 약을 찾았다. 과음에 과식한 탓이다. “갑자기 너무 많이 먹으면 역류할 수 있어요. 일단 이거 빨리 드시고.”

인근 모텔 주인은 남편이 술을 너무 마셔 죽겠다고 한다며 한참을 하소연했고, 20대 남자는 속이 아프다며 몸을 떨었다. 증세가 심한지 한 40대 여성은 위궤양 약을 달라고 통사정했다. 병원 처방전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는 약이다. 그 여성은 한 달 전에 병원 처방전을 갖고 와 약을 타갔다고 말했고, 김 약사는 그렇다면 의사에게 연락해 리필처방을 해도 될지 물어보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타 간 위궤양약이 한 달 치다.

사후피임약을 급하게 찾는 여성도 있었다. 20대인 그녀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사후피임약을 사 간다. 병원 문이 닫힌 저녁에 난감한 표정으로 약국을 찾아 온 그녀. 약국에서 부랴부랴 병원을 연결해 처방전을 받아오게 했다. 이 동네엔 왜 그런지 콘돔보다 피임약을 찾는 사람이 많고, 중년여성들까지도 곧잘 사후피임약을 찾는다고 했다. 하루에 이 약국을 다녀가는 사람은 평균 200∼300명이지만 실제 약을 사 가는 사람은 100∼150명이다. 약사를 부르는 호칭도 제각각이다. 약사님, 선생님, 박사님….

藥, 藥, 藥.

사실 김 약사도 남용을 우려했다. 병원에서 과잉 처방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도 일반의약품이라 할지라도 과연 달라는 대로 줘도 되는 건지 머뭇거릴 때가 있다. 그래서 한 통 달라는 걸 몇 알 먹어보고 오라 하기도 하고 집에 약이 얼마 남았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하루에 두세 번씩 찾아와 약 한두 개씩 사 가는 사람들. 말려 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일종의 신념이다.

먹어야 산다. 밥이든 약이든 먹어야 산다. 그래서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때론 왜 그렇게 약을 드시냐, 그만 드시라고 하고 싶지만 오늘도 피로회복제와 약을 건넨다.

그들은 아프다. 몸도 마음도 아프고 또 아프다. 그래서 찾아온다. 그중엔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사람도 많다. “머리도 아프고 팔도 쑤시고, 요즘은 속도 왜 이렇게 쓰린지 모르겠어.” 약사도 안다. 병이 아니라는 걸. 다만 무겁고 버거운 삶이 그들을 짓누르기 때문이란 걸. 그래서 기껏해야 피로회복제 타 주는 정도로, 타이레놀 한 알 주는 정도로 멈추지만 그 정도로도 사람들은 위안을 얻는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에겐 생명줄이다. 93세 독거노인은 옴짝달싹할 수 없어 78세 옆집 할머니에게 약 심부름을 시킨다 했다. 불법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는 참다 참다 약국에 간다고 했다.

위로와 조언이 필요한 사람들

밤에 찾아오는 사람 중엔 약보다 ‘조언’이 필요한 이도 많다. 첫 아기가 열이 나 어떻게 해야 하냐며 찾아 온 젊은 부부에게 정작 필요한 건 해열제 시럽이 아닌 해열제를 먹이는 방법이다. 임신을 걱정하는 미혼 여성에겐 사후피임약보다 약의 복용법과 효과를 숙지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밤에 찾아오는 사람은 불안해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 신경이 온전히 내 몸뚱이 하나에 집중된 시간이 되면 낮에 미처 못 느꼈던 고통이 찾아온다. 아이와 남편, 부모님 걱정으로 번지면서 잠 못 이룬다.

김 약사는 오늘도 심야약국 문을 연다.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전국의 많은 약국이 밤 12시까지, 새벽 2시까지 요일별로 돌아가며 문 여는 날까지. 체력이 되는 한 그 전에 그만두지 않겠다고.

18평 약국 문을 닫지 못하는 까닭은, 술 취해 행패부리는 사람을 끝까지 내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주는 약이 단순한 물약, 알약, 드링크가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이란다. 그는 이미 보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고생한다며 바나나며, 반찬거리며, 옥수수며 놓고 가는 손님들로부터.

고층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작은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이 듬성듬성 놓인 동네. 24시간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24시간 찜질방이 생기고, 새 건물이 하나 둘 생기면서 예전보다 주변 환경이 깨끗해졌다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은 괴안동(역곡3동)의 시계는 부천에서도 유독 더디게 가는 듯했다. 그날 오래된 연립아파트에선 ‘뉴타운지구지정 취소 소송 고법 승소’라는 현수막이 하늘거렸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