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의 역사

입력 2011-07-28 17:46


청교도운동의 동기

청교도운동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예를 들면 대표적 청교도 역사가인 다니엘 닐(Daniel Neal)은 14세기 존 위클리프와 그의 추종자 롤라드에서 찾는다. 그리고 청교도주의는 1524년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에게서 최초로 발견된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16세기 유럽대륙의 종교개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유럽대륙 제네바로 망명한 뒤 제네바에서 칼뱅의 영향을 받은 존 녹스(John Knox)가 최초의 청교도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청교도운동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발생한 것으로 영국국교 안에 있는 모든 비성서적 신앙과 생활을 정화하려는 동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교도들에게 있어 유일한 교회생활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복종이다.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 그들은 영국국교에서부터 분리하려는 동기가 없었고, 국가가 교회의 일치를 폐기시킬 아무 의도도 없었다. 다만 영국국교와 영국국교신학 내의 과격한 변화와 정화운동을 전개하도록 모색한 것이다. 그러나 점차 영국국교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정화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중도적 교리형성이 비성서적임을 지적하였다.

첫째, 공동기도서를 저항하고 거부하는 운동이었다. 공동기도서에는 성만찬 상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루터적인 그리스도의 몸의 신체적 출석을 믿지 않고, 칼뱅적인 영적 임재설을 믿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은 신체적으로 임재하는 것을 믿지 않기에 무릎을 꿇고 받는 것을 거부하고, 서서 받는 것을 주장한다.

둘째, 교회운영에 관계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스도는 정부에 대항하는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정부 위에 군림하는가? 아니다. 정부는 교회 위에 군림하는가? 아니다. 세속정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한다. 그리고 세속정부의 최고지도자인 왕이 교회의 최고지도자임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 뿐 아니라 영국성공회 감독도 교회 회중을 지배할 수 없다는 민주적인 회중주의를 칼뱅신학에 근거해 주장한다. 회중 이상의 어떤 영적 권위-세속 왕이나 감독-가 있을 수 없다. 교회의 올바른 치리는 장로 중심이 되어야 하고, 감독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로 중심과 회중 중심의 교회 통치는 성서적 기독교의 모습임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셋째, 1630년 자유와 예정의 논쟁에서 영국국교는 알미니우스주의에 흥미를 갖게 됨으로써 예정보다는 자유의지를 더욱 강조하는 신학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은 알미니우스적 경향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영국국교를 정화하기 위해 영국국교의 교리적 입장에 항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칼뱅적 예정신앙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칼뱅주의의 부활이 곧 청교도주의였다. 그러나 하나님 본성, 곧 주권으로부터 예정을 이해한 게 아니라 은총을 체험한 경험의 표현으로써 예정신앙을 말하였다. 예정신앙은 또한 행동주의신앙으로 이어졌다. 예정에 든 사람, 곧 구원받은 사람인 것을 확신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행동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청교도주의가 많은 공헌을 하였다. 특히 오늘날 미국의 자본주의는 1620년에 미국에 도착한 회중교회 청교도들에 의해 발전하였던 것이다.

김홍기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