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입력 2011-07-28 18:37
걸작의 공간/J. D. 매클라치/마음산책
작가는 엄밀히 말해 은둔자다. 자기 내면으로의 은둔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글을 쓰는 공간은 외부와 격리돼 있는 또 하나의 은둔지다. 그 은둔지에서 고독을 친구 삼은 끝에 걸작이 탄생되는 것이다.
탁월한 영문학자인 미국 예일대 J. D. 매클라치 교수가 쓴 ‘걸작의 공간’(마음산책)은 “우리의 책장에 꽂혀 있는 걸작이 어디서 탄생됐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19세기 미국 대표 작가 21명의 집을 찾아 나선 결과물이다.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오차드 하우스에서부터 ‘톰 소여의 모험’이 탄생한 마크 트웨인 하우스, ‘모비 딕’이 탄생한 허먼 멜빌의 애로헤드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의 집을 살피다 보면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창이 열리고 그 작품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은둔 생활을 하며 흰옷만 입고 지냈던 에밀리 디킨슨은 2층 자기 방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불신에 대한 황홀한 찬양’을 기반으로 독특한 시를 썼다. 월트 휘트먼과 함께 미국 시의 양대 창시자로 꼽히는 디킨슨은 휘트먼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수많은 사진을 찍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겨우 열여섯 살에 떠돌이 사진사가 찍은 은판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렇기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낙태에서부터 레즈비언 애정 행각에 이르기까지 부조리한 멜로드라마로 포장됐고 동시에 반전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개척자로 그려졌다. 조부인 새뮤얼 파울러 디킨슨이 1813년에 지은 넓은 연방 양식(로마 복고풍 건축 양식)의 벽돌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천재성에 필요한 은둔이라는 조건을 선택한 채 집에 틀어박혀 어휘로 이루어진 세계로 후퇴했다.
고요함을 찾아 숨어들었던 윌리엄 포크너는 집 뒤쪽에 서재를 만들었고 그 서재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 ‘우화’를 구상했다. 실제로 지금도 포크너가 서재 벽 위에다 써 둔 ‘우화’ 플롯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로완 오크’라고 이름 붙여진 그의 집은 시골 대지주의 삶을 연상케 하는데 그는 방해받는 것에 질색이어서 심지어 전화기가 있는 것도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직접 상을 받으러 갈 수는 없을 거예요. 너무 먼 곳입니다. 나는 여기서 농사짓는 사람이라서 집을 비울 수가 없어요.” 포크너가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후에는 장작을 팼다.
이렇듯 문학의 산실은 작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 치열한 싸움을 벌인 영감의 현장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