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에게도 산기도 가르쳐”…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의 회고
입력 2011-07-27 20:44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 미국 기독교방송 CBN 설립자 팻 로버트슨. 두 사람은 뉴욕신학교 동문이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주선애(87) 장신대 명예교수로부터 ‘한국식 기도’를 전수받았다는 점이다.
27일 오후 서울 길동 자택에서 만난 주 교수는 “뉴욕신학교 유학시절 미국 학생들이 찾아와 산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며 “그게 그들의 인생을 바꾼 회심의 사건이 됐다는 걸 나중에야 들었다”고 회고했다.
주 교수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건 1956년 7월이었다. 남편을 갑작스럽게 여의고 떠나온 유학생활은 몹시 외롭고 힘들었다. 무엇보다 잘사는 미국과 못 사는 한국이 그렇게 대조될 수가 없었다. ‘왜 하나님은 차별하십니까. 왜 이렇게 불공평하십니까’라는 질문도 원망도 수없이 했다. 답답한 마음에 새벽과 밤이면 기도할 교회를 찾았지만 불 켜진 교회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학교 옥상 빈 창고를 새벽마다 찾아갔다. 기도하면서 한국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하다는 나름대로의 해답도 얻었다.
새벽마다 들락거리는 그녀를 보며 동료들은 금세 알아챘다. 그리고 새벽기도에 동참했다. 미국 학생들은 기도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그녀에게 질문했다. 한국식 기도를 배우고 싶다고. 그러면 철야기도, 통성기도, 금식기도, 산기도 등을 하나하나 가르쳐줬다. 주 교수는 1950년대 초반, 전쟁고아를 기르던 대구 신망원을 맡아 새벽기도를 통해 문제아들을 믿음의 아이들로 바꾼 경험이 있었다. 기도를 통해 변화된 간증들은 미국 학생들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됐다.
그해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1주일간 청소년 캠프를 갔다 온 뒤 기숙사에서 쉬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더니 3명의 미국 남학생이 인사했다. 팻 로버트슨, 유진 피터슨, 딕 화이츠라는 학생이었다. 이들은 다짜고짜 “1주일 내내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다”며 “마음이 너무 답답해 산기도를 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셋이 산에 가는데 내가 따라갈 이유가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우리 셋은 지금 산기도를 꼭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거듭 간청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지르고, 하고 싶은 대로 기도하는 게 산기도”라고 설명했다. 소나무 뿌리를 뽑는 기도에 대해서도 얘기해줬다.
그때 가르쳐준 산기도가 그들의 인생을 바꿨다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난 뒤 알았다. 진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던 세 명은 그 산기도에서 응답을 받았다. 팻 로버트슨은 기독교방송국, 유진 피터슨은 목회, 딕 화이츠는 교도소 사역의 비전을 발견했던 것. 로버트슨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피터슨은 지난 5월 뉴욕신학교에서 열린 주 교수의 김마리아상 수상 자리에 보낸 영상 축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한국교회를 향한 주 교수의 당부도 역시 기도의 회복이다. “한국교회를 지탱하던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요. 고난 없이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든 교회서든 산에서든 기도를 회복할 때 한국교회도 살아날 것입니다.”
Key Word-산기도
한국교회 특유의 기도법이다. 주로 산속에 있는 기도원, 산상에서 이뤄지는 기도를 일컫는다. 안락하고 편안한 교회 의자보다 척박한 곳에서 하나님과의 일대일 대화에 집중하려는 불퇴전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