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아궁이와 빙렬

입력 2011-07-27 18:04


궁궐 건축의 장식에는 상징이 많다. 제작자 혹은 주문자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벽에 그려진 포도송이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것이고, 복도 난간에 나무로 장식된 조롱박은 자손의 번성을 소망한다. 담장에 새겨진 거북등무늬 디자인은 장수를 비는 것이다. 막새기와에 ‘壽’와 ‘喜’를 넣은 것도 같은 이유다.

조상들은 창덕궁 낙선재의 누마루 아래 아궁이 벽면도 비워두지 않고 빙렬(氷裂)을 그렸다. 겉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벽에 얼음이 쫙 갈라지는 듯한 문양을 새긴 것은 주술적 상징이다. 얼음을 통해 불티를 잡는 방화벽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비대칭의 빙렬무늬는 도자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표면에 잘게 금이 간 것은 흙과 유약이 가마 속에서 열을 받으면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도공들은 가마에서 도자기를 막 꺼낼 때 나는 “텡∼테엥∼텡” 음향을 좋아한다. 섬세한 빙렬이 생기는 순간이다. 싸락눈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와 비슷하다.

손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