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정부 정책의 신뢰

입력 2011-07-27 18:05


요즘 정부 정책에는 감흥이 별로 없다. 정책 방향은 맞는 것 같은데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늘 한 박자 늦고, 여론에 밀려 뒤늦게 대책이 나오는 상황이 반복된다. 급조하다 보니 뭔가 어설프고, 그게 해법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기침을 하면 뒤늦게 앞다퉈 나서는 모양새도 자주 연출된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그러니 ‘재탕’ ‘쥐어짜기’ 등 틀에 박힌 대책만 내놓는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최근 고졸 채용 확대를 놓고 금융권과 민간 기업, 정부까지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8월부터 고졸 출신을 공공기관 채용에서 우대토록 할 방침이라고 27일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앞서 민간 금융권에 2013년까지의 고졸사원 채용 계획을 보고하라고 했다. 저마다 뭐라도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가만히 있기는 그렇고 우선 숟가락이라도 얹고 보자는 심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난데없이 고졸 채용을 늘리라고 하면 현장에선 어떻게 반응할까. 정부 강요에 따르는 척하다 생색만 내고 마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등 떠밀려 채용한 고졸자를 냉대하고 눈칫밥만 먹게 하는 수도 있다. 대졸자가 넘쳐나는 시스템을 놔두고, 고졸 출신 취업 쿼터를 늘리면 역으로 대졸 실업이 심화될텐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논의조차 없다. 물론 고졸 취업을 늘리는 건 적극 권장할 일이다. 즉흥적인 관치(官治)는 경계하자는 얘기다.

물가 대책은 늘 맹탕이다. 이 대통령이 지난 20일 “발상의 전환을 해 물가 구조 체계를 개선할 방안을 발굴하라”고 주문하자 26일 물가종합대책이 나왔다. 불과 6일 만이다. 핵심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설렁탕, 자장면, 배추, 무 등 10개 품목의 가격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구체화하는 수준일 뿐 새로운 건 없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초기 강조한 이른바 ‘MB물가지수’를 재탕한 느낌도 든다. 지난해 말 유정복 전 농식품부 장관이 구제역 대국민 담화문 발표 때 직전 장관의 담화문을 그대로 재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같은 날 지식경제부는 전기료 4.9% 인상안을 발표했다.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같은 날 서민들이 파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가격을 들먹이는 건 어색했다. 최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해당 품목의 불법·편법 인상을 단속하겠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자장면과 설렁탕값 인상을 어떻게 단속하겠다는 건지 딱하다. 정부가 물가 관리를 잘못했는지는 불문하고, 장사하는 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같아 걱정된다. 고환율이나 성장위주 정책 탓이란 비판에는 귀를 막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물가 상승을 정부 정책의 실패로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지성적이지 못한 태도”라고 항변했다.

동반성장 정책은 뒤늦은 감이 있다. 이 대통령은 초기 트리클다운효과(낙수효과)를 강조했다. 대기업과 수출기업이 잘되면 성장 과실이 서민과 중산층으로 흐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는 분위기다. 경실련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15대 재벌의 계열사는 472개에서 778개로 306개(64.8%) 늘었다. 친기업 정책을 펼치자 문어발식 확장을 했고, 중소기업 영역까지 잠식했다. 기업들은 번 돈을 풀지 않고 현금으로 쌓아뒀다. 투자할 데가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부는 애초 돈이 되면 뛰어들고,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 기업의 속성을 간과했다. 뒤늦게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에 나섰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년 대선까지 1년반이 남지 않았다. 기업들은 1년 정도만 견디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고졸 채용 확대나 동반성장 등 친서민 정책을 멈추라는 얘기는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신념에 찬 정책을 펼치는 정부 관료들을 보고 싶다.

노석철 산업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