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평창조직위가 해야 할 일
입력 2011-07-27 18:05
“선수 출신들을 조직위로 대거 받아들여 스포츠 외교관으로 육성해야”
스포츠 상식문제 하나. 프란츠 베켄바워, 미셸 플라티니, 나가누마 겐.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 프랑스, 일본을 각각 대표하는 유명한 축구선수 출신’이라면 정답이다. 베켄바워는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한 유일한 축구인이며 플라티니는 ‘그라운드의 예술가’라는 별명으로 프랑스 아트사커의 터전을 닦은 선수로 기억된다. 고인이 된 나가누마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 일본팀 감독으로 동메달을 지휘했고 나중에 축구협회장을 맡아 한·일월드컵의 산파 역할을 했다.
스포츠 상식문제 둘. 앞의 3명과 함께 카타리나 비트의 공통점은? 비트는 동독 출신 피겨스케이팅 여왕이었으므로 공통점을 ‘운동선수 출신’ 정도로 하면 상식 수준의 답은 된 셈이다. 하지만 ‘운동선수 출신 스포츠 행정가’라는 답을 내놓으면 상식을 넘어 지식 수준이 된다. 이들은 선수로서 불꽃같은 삶을 산 뒤 은퇴 후에는 행정가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스포츠인이다. 베켄바워는 2006년 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을 지냈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직위원장을 지낸 플라티니는 현재 유럽축구연맹 회장으로 차기 국제축구연맹(FIFA)의 유력한 회장 후보로 꼽힌다. 비트는 최근 2018동계올림픽 유치를 둘러싸고 평창과 접전을 벌인 뮌헨의 유치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장황하게 이들의 이력을 나열한 것은 이미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상식이 돼 버린 선수 출신 스포츠 외교관들을 우리도 육성해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동안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 그리고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데는 정부와 기업인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최고 통치자가 앞장섰고 정부의 외교 및 행정 인력이 가세했다. 수많은 기업 총수들이 자사 정보력을 업고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탰다. 하지만 스포츠인들의 노력은 이들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거나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스포츠 영웅이 있지만 정작 올림픽과 월드컵의 유치위원장이나 대회조직위원장 등 수장을 맡은 예는 없다. 독일, 프랑스, 일본이 그랬던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우리 스포츠인들이 배제된 것은 유치 경쟁에서 앞서 가던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앞장서고 기업이 미는 민관 총력체제에서 스포츠인들의 입지는 좁아보였다. 하지만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는 정부와 기업인의 모임이 아니다. 이들이 상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은 대개 스포츠인 출신이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조차 벨기에 요트 대표선수로 세 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스포츠인이다.
앞서 두 차례의 유치전에 실패했던 평창유치위가 이번에 김연아와 토비 도슨 등 선수 출신을 전면에 내세워 프레젠테이션을 펼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선수는 선수끼리 알아본다고 같은 스포츠인들은 동류의식이 강하다. 뮌헨유치위가 막판에 국제 스포츠 무대의 마당발 베켄바워를 긴급 투입한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평창유치위는 김연아 외에 문대성 IOC 선수위원, 강광배 전이경 등 선수 출신들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유치전에 투입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의 술회처럼 유치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활약은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다.
우리도 이제 선수 출신 스포츠 외교 인력을 키워야 할 시점이 왔다. 스포츠 현장에서 보면 우수 선수들은 운동만 하지 않는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역 없이 꽤나 유창한 영어로 해내는 선수들을 자주 본다. 이들의 꿈도 은퇴 후 스포츠 행정가인 경우가 많다.
조만간 구성될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는 선수 출신 스포츠 외교관을 양성하는 학교로서는 제격이다. 선수 출신들이 조직위에 대거 들어가 스포츠 외교관의 역량을 밑바닥부터 키워야 한다. IOC와 동계종목 국제경기단체에 맞서 조직위의 입장을 대변하다 보면 교섭 능력도 쌓이고 인맥도 자연히 형성될 터다. 선수 출신들이 향후 국제대회 유치전에 앞장서는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위해 당국의 특단의 조치를 기대해 본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