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프롤로그] 열정이 이끄는 삶

입력 2011-07-27 18:10


제가 좋아하는 인물 리스트에 버트런드 러셀이 들어 있습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로 20세기를 대표한 지성인 중 한 명이지요. 그는 인류애를 수호하는 일에 헌신하며 전쟁과 격동의 한 세기를 ‘행동하는 지성’으로 살았습니다. 러셀은 말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단순하지만 아주 강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삶을 지배해 왔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그리고 어려움을 겪는 인류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연민이다.”

근사하지 않습니까. 이번 호엔 러셀 못지않게 열정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미국 멤피스에 거주하는 조월호씨. 자서전 출판기념회 참석차 방한했다가 ‘이웃’과 인터뷰했습니다. 인간 사랑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온갖 시련을 딛고 일어서 이제는 미국사회의 당당한 주류로서 재미동포들의 도우미가 된 그녀의 삶이 자랑스럽습니다.

‘훈남’ 작가 이지성씨의 삶도 열정이란 단어가 없으면 설명이 어렵네요.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자기계발서 저자로, 독서 멘토로 변신한 동기와 과정이 가슴 뭉클합니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그의 관심과 열정이 많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열정이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앙드레 지드는 ‘좁은문’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매일 매일 일상의 바람이 폭풍처럼 지나가도 사람의 가슴엔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다는 것을 믿느냐.” 촛불이 있음을 느낀다면 아직 열정이 살아 있는 겁니다. 그 열정이 완전히 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열정이 있으면 노인도 젊은이가 됩니다. 반면 열정이 없으면 젊은이도 노인이 돼 버리지요.

잘못된 열정도 있습니다. 노르웨이 대참극의 주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네오파시즘적 사회혁명론을 구현하기 위해 수년간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념과 열정은 결국 인도주의와 박애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반인류적 범죄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올바른 열정’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박동수 종교기획부장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