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군도서 30년 살다 귀국한 권주혁씨 “남태평양에 울려퍼지던 찬송가 많이 그리워지겠죠”
입력 2011-07-27 19:42
문득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각종 열대어와 산호초로 장관을 이룬 에메랄드빛 청정 바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줄지은 야자나무,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정글, 까만 피부에 순박한 눈망울을 가진 사람들….
‘남태평양의 진주’라 불리는 솔로몬군도에서 30년간 이건산업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권주혁(59·청량리교회) 장로는 요즘 무시로 상념에 젖어든다. 청춘을 송두리째 바쳐 조성한 추억의 곳간에 쟁여놓은 갖가지 풍경과 일화들을 되새기면서 다양한 감정을 맛보는 것이다. 하기야 인생의 절반 이상을 오롯이 보낸 곳인데 오죽하랴. 그것도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곳이 아닌가.
“남태평양은 내 몸과 마음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몸에 익은 그곳의 자연과 함께 부대꼈던 사람들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 25일 서울 양재동 동원산업 본사에서 만난 권 장로는 남태평양 예찬론을 펼쳤다. 최근 출간된 그의 저서 ‘천사 같이 말 못하나 바울 같지 못하나’를 매개로 신청한 인터뷰에서 그는 솔로몬군도에서 지낸 추억담과 근황을 담담하게 풀어갔다. 이건산업의 남태평양 담당 사장까지 지낸 그는 올해 초 퇴직해 현재 동원산업 상임고문으로 있다.
솔로몬군도에서의 30년
권 장로의 이야기에서 역시 솔로몬군도 생활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30년 넘는 현지 생활에서 갖가지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있을 법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좀처럼 짜릿한 일화나 사연은 나오지 않았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지냈다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 그는 현지인들과 함께 했던 신앙생활을 은연중 강조했다.
“솔로몬군도에서 30년 이상 현지인들과 부대끼면서 신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지 못했다면 아주 어렵고 힘들었을 겁니다. 현지에 도착한 직후부터 꾸준히 현지 교회를 찾아 예배드리는 과정에서 그들과 공감대를 만들어갔습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음식점을 해도 한 곳에서 30년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남태평양 정글에서 그 기간을 보내면서 기업의 틀을 세우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겠나. 허다한 대기업이 솔로몬군도에서 사업 터전을 닦기 위해 노력하다 철수했다는데, 말해 무엇하랴.
알고 보니 권 장로가 현지로 들어가게 된 계기 또한 신앙이었다. 1980년 투자조사차 현지를 찾았을 때 마을마다 교회당이 서 있는 모습에 호감을 갖고 혈혈단신 들어간 것. 이후 6년 동안 혼자서 목재 무역과 조림 등 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선교? 신앙생활!
어쨌든 권 장로는 솔로몬군도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특히 그의 눈빛은 빛났다. 그런 가운데 그는 나름의 메시지 하나를 전하고자 애쓰는 듯했다.
“사도 바울이 로마제국에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면서도 가슴에 진실과 열정을 담고 있었기에 로마인들에게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는 이벤트는커녕 과시적인 어떤 것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권 장로의 의중이 드러났다. 한국교회에서 ‘선교’ 혹은 ‘전도’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여러 행태와 현상에 못마땅한 점이 있었다. 그는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하다”는 말까지 더하며 자신의 뜻을 구체화했다.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해 제대로 한 마디 훈수를 해보겠다는 뜻이었다.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강함을 구하라는 이야기였다. 앞선 자 혹은 우월한 자의 입장에서 하는 식의 선교, 행사나 숫자 등 외양에 치우친 선교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말이었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겠다는 생각을 잠시도 놓친 적이 없습니다. ‘천사 같이 말 못하고 바울 같지 못하나’라는 구절이 들어 있는 찬송가 511장(통 263장)을 입에 달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내가 선교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새로운 시작
권 장로는 이제 솔로몬군도에서 완전히 돌아왔다. 환갑을 앞둔 그는 지금 새롭게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얻은 동원산업 상임고문 업무에 적응하느라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미뤄놓았던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지난 3월 경기대학교 정치대학원에서 외교안보 박사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틈틈이 해온 연구 실적을 토대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전쟁역사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학문적으로 밝혀볼 계획입니다.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 역할도 충실히 해낼 것입니다.”
1인3역, 웬만큼 활동적이고 정열적인 사람도 감당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겁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흥미와 기대를 느낀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박사과정 공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착실히 준비해온 것이고, 산림학 강의 또한 충분한 현장 경험으로 잘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김 장로는 독학으로 이룬 ‘전쟁학 전문가’다. ‘헨더슨 비행장’ ‘베시오 비행장’ ‘나잡 비행장’ ‘한국공군과 한국전쟁’ ‘기갑전으로 본 한국전쟁’ 등 10여권의 전쟁 관련 저서를 냈다. 원서 3500여권을 포함해 5000여권의 군사서적을 갖고 있으며, 전 세계 이름난 전쟁 현장을 대부분 답사하기도 했다. 이런 특이한 이력으로 그는 육군 군사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제8호 명예해군과 제87호 명예해병의 타이틀을 얻었다. 철부지 소년 때 품었던 ‘육군 대장’의 꿈을 우회적으로 이루고자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다.
주일 성수, 인생
“사관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주일에 치러지는 입시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진학해 학군단(ROTC)에 들었는데 주일 특별훈련 때문에 관뒀습니다. 결국 주일 성수가 내 인생을 바꾼 셈이죠. 하나님의 뜻입니다.”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권 장로는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 주일 성수를 생명처럼 여겼다. 심지어 직장을 잡을 때도 주일의 입사시험을 피해 응시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이건산업을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일터로 여겼다.
서울 이태원 삼애교회에서 은퇴한 권오준 목사의 장남인 권 장로는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그의 아들은 기독교영화 연출가로 유명한 권순도 감독이고, 딸은 대성그룹 법률팀에서 일하는 권순혜 변호사다. 시쳇말로 자식농사 괜찮게 지었다. 권 장로는 솔로몬군도에서 태어나 호주 등지로 떠돌며 공부한 두 자녀를 하나님의 큰 선물로 여긴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내온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 은혜의 손길이 어느 한 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특히 30년 넘게 남태평양의 솔로몬군도에서 특이한 경력을 쌓게 해주신 데에는 하나님의 각별한 배려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환갑이면 인생의 황혼으로 접어드는 시기다. 권 장로는 내년이면 환갑이다. 하지만 솔로몬군도를 호령했던 그의 말과 모습에선 아직도 청춘의 패기와 열정이 살아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내 이야기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을 주고, 믿는 사람들에게 더욱 신앙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