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창우 (21) 사람 살리니 또 다른 선교의 열매가…

입력 2011-07-27 18:22


조이도 라오스 집을 나설 때 눈물을 흘렸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가족들은 동네 먼발치까지 따라왔다.

문제는 공항에서부터 생겼다. 베트남 항공을 타고 서울로 향하려는데 그만 제지를 당한 것이다. 조이의 몸이 좋지 않으니 편한 자리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는데 승무원이 그만 매니저에게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세 분은 비행기를 탈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 비자가 발급된 여권도 있고 비행기 티켓도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 안 됩니다. 가다가 동행자가 만일의 사태라도 벌어지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보시오! 이 사람은 라오스 사람입니다. 당신네 국민이란 말입니다. 치료받기 위해 한국으로 데리고 간다는데 그걸 막는 게 말이나 됩니까.”

결국 나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각서를 쓰고 탑승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조이의 상태는 무척 좋지 않았다. 열이 나고 토하고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귀에서는 고름까지 나왔다.

어렵게 우리 병원에 도착했지만 조이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주한 라오스대사관에 연락해 통역자 K자매를 소개받았다. 한양대병원으로 조이를 옮겼는데 심장병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살라세미아라는 희귀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간이 붓고 적혈구가 파괴되는 병이었다.

“이 원장, 이 친구를 치료하겠다고 욕심을 내면 끝도 없어. 심장병만 치료해 주는 게 어때?”

“그러면 선천성 삼천판 폐쇄증만 치료하는 게 나을까요?” “희귀병을 고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해.”

결국 조이는 심장병 수술만 하기로 했다. 사타구니에 특수기구를 넣어서 심장의 삼천판을 여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효과는 하루 만에 나타났다. 10m도 걷지 못하던 조이가 쉴 새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월드와 서울시내를 구경시켜 줬는데 언제 심장병을 앓았냐는 듯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며칠 후 나는 조이와 그의 누이를 데리고 라오스로 향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조이의 모습을 보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의 누나들은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동생이 돌아오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될 정도로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년의 시간이 흘러 의료선교차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 조이를 찾기 위해 학교로 갔다. 학생들은 이미 조이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의료선교 대원들이 운동장에 들어서자 전교생이 일렬로 서서 반갑게 맞이해 줬다. 우리는 축구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아진 조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이를 돌봤던 우리의 작은 선행이 또 다른 선교의 열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바로 라오스어 통역자 말이다. K자매는 라오스에서 아버지가 정보국장으로 재직할 정도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국적의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이유로 배척당한 아픔이 있었다.

게다가 한국 생활마저 힘들었다. 한국 귀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한 여인이었다. 그녀를 지탱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었다. 그리고 라오스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했다.

“저의 간절한 소망은 라오스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나는 그녀의 앞날을 위해 학비를 지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우리 부부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은 정성을 보탰다. 그녀는 A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J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조만간 K자매가 라오스 선교의 새 장을 열 첫 열매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