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현실화’ 딜레마… 물가불안에 또 미뤄

입력 2011-07-26 22:33

정부는 26일 발표한 전기요금 조정안이 서민 부담 최소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초 공언했던 전기요금 현실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은 유보해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서민들보다 부유층과 대기업에 더 지웠다. 대기업·대형건물의 전기요금 인상률은 6.3%로 주택용(2%)이나 영세 자영업자·중소기업(2.3%)의 3배 가까이 된다. 고소득 노인들이 주로 입소하는 노인복지주택, 유료양로시설, 유로노인요양시설의 요금 감면 혜택(21.6%)은 중단했다.

현재 취약계층에 적용하던 정률제 감면 방식도 수정된다. 현재는 장애인과 상이·독립유공자는 월 전기료의 20%, 기초생활수급자는 21.6%를 할인해 준다. 차상위계층의 할인율은 2%다. 전기를 많이 쓰면 할인액이 커지는 모순이 있다. 이를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월 8000원, 차상위계층은 월 2000원 정액 감면으로 바꾼다. 기준 금액 미만으로 전기를 사용하면 차액을 모아 연말에 현금이나 쿠폰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해 전기 절약을 최대한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주택용 전기에도 계절별·시간대별로 요금을 차등부과하는 피크타임 요금제를 다음 달부터 자원하는 1100가구를 대상으로 6개월간 시범 실시한 뒤 내년부터는 확대할 계획이다.

냉장고 등 주요 가전제품의 에너지효율 등급 기준은 지금보다 20∼30% 높게 조정된다. 전열기에 대해선 올해 말까지 에너지 비용 표시제를 도입키로 했다. 한국전력은 송전 철탑 간격을 현재보다 30% 늘리는 식으로 매년 1조원 이상의 강도 높은 원가절감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번 전기요금 조정에도 전기요금은 원가의 90.3%에 불과하다. 지경부는 전기요금의 원가보상률을 100%까지 높이겠다고 했으나 이번에도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언제 전기요금이 오를지 예측할 수 없어 요금 인상 때마다 매번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전력은 2008년 이후 영업 적자를 지속해 3년간 누적 영업적자가 6조1000억원에 이르렀다. 더구나 전력수요가 해마다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어 전력수급 안정도 시급한 실정이다. 에너지 절약을 요구하는 대국민 담화문까지 발표하면서 전기요금 현실화 방안 마련을 유보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제 석유가격에 연동해 전기요금을 자동 조절하는 연료비 연동제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지경부 관계자는 “중장기 요금 인상 계획을 내놓으면 미리 제품 가격에 반영돼 물가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업용 전기요금을 동결한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재 농업용 전기는 원가의 34.1%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비닐하우스 난방이나 농산물 건조 등에 면세유 대신 전기보일러를 쓰는 실정이다. 전기 절약 추세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지경부는 올해 작황이 나쁘고, 이달 초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른 농가 피해도 우려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