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지분 얽혀… 한 걸음도 못나가는 ‘야권 대통합’
입력 2011-07-26 18:23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야권 통합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야권 내부와 시민단체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통합론에 대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3당의 시선은 차갑다. “말잔치로 소수정당을 우롱하고 있다” “진정성이 없다”며 불신마저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정책·이념적 차이, 한 지붕 아래서 살 수 없다는 정서적 괴리감, 통합에 따른 지분 챙기기 등이 뒤엉킨 결과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통합의지 있나=야3당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민주당이 그동안 아무런 접촉이 없다가 뜬금없이 통합을 하자고 손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야권 통합에 별 뜻이 없으며, 통합 실패를 대비해 ‘알리바이’를 만든다고 의심하고 있다.
통합을 하려면 사전에 공식·비공식적인 접촉을 갖고, 조율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불쑥 통합론을 들고 나온 것은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진보신당 강상구 대변인은 “민주당은 우리 측 관계자를 몇 차례 비공식적으로 만났다고 주장하는데 만나서 나눈 내용이 당의 공식루트에 보고된 적이 없다”며 “그런데 갑자기 무슨 대통합이냐”고 반문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성과도 없고 노력도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시기적으로 대통합은 물 건너간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4·27 재보선 당시 한·유럽연합 FTA 비준 저지 등을 담은 야권 정책합의문을 작성했으나 선거 직후 파기한 점도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원로 21명도 26일 국회에서 ‘희망 2013·승리 2012 원탁회의’를 출범하고 야권의 적극적인 통합 노력을 촉구했다.
◇진보정당,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아픈 기억’=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견해차다.
박용진 전 진보신당 부대표는 지난 13일 민주당이 주최한 야권 통합 관련 토론회에서 “민주정부 10년 동안 1800여명의 진보정당 당원이 구속됐다”는 말로 진보세력이 민주당에게 느끼는 분노를 표현했다. 26일 구속노동자후원회에 따르면 노조활동 및 집회시위 등으로 구속된 노동자 수는 김영삼 정부 632명, 김대중 정부 892명, 노무현 정부 1053명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 진보정당의 당원 혹은 노동운동가들이 자살한 경우도 많다. 2007년 한·미 FTA에 반대하며 민노당 관악지부 당원이었던 고(故) 허세욱씨가 분신자살했다. 최근 국회가 청문회를 추진 중인 한진중공업 사태의 경우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지회장이 목을 매 숨졌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한·미 FTA와 비정규직 정책 실패로 피해를 본 노동자와 농민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가 야권 통합 논의의 기본전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과 진보세력은 충돌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가 완주를 포기했다면 민주당 후보로 나온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당선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 관계자는 “한 전 총리가 총리로 재직하던 2006년 평택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던 민노당원 40여명이 구속됐고, 당시 한 전 총리가 강경대처를 지시했다”며 “당원들이 한 전 총리로의 후보 단일화를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정서와 문화가 다르다”=참여당은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보다는 정서적인 면과 당 운영과 관련된 문화적 이질성이 민주당과의 통합에 걸림돌이다. 정서적으로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받을 때 민주당이 보여준 태도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참여당이 다른 야당과 공동으로가 아니라 단독으로 민주당과 통합할 경우 당원의 90%가 탈당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참여당 이백만 대변인은 “당원들이 지역에서 민노당 진보신당 쪽 사람들과는 공동사업도 하지만 민주당과는 생각의 차이 때문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