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사람 사이에 섬이 있었네
입력 2011-07-26 17:43
장마가 끝나니 열기가 거리를 덮친다. 이제는 에어컨이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 집에는 에어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칠월 내내 거실로 들어서는 긴 복도와 마주보는 베란다 문을 열어놓았다. 그 통로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집을 지을 때 원주민들 말을 듣고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길로 창을 내 아파트를 지었다고 한다. 바람이 지나는 길에는 햇살도 함께 지나가는 걸까. 낮에는 렌즈로 햇빛을 모아놓은 듯 눈이 부시다. 그래서일까. 영하의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른다.
집 근처 운중천은 내가 사는 곳에 와서는 상류보다 시내의 폭이 네 배로 넓어진다. 평소에는 수량이 적어 졸졸거리는 것이 시원찮다. 좀 멋있는 시내답게 인공으로라도 물을 돌려 상류에서 물을 많이 내려 보낼 수는 없을까 싶었다. 그런데 올 장마로 운중천은 새로운 물길을 만들었다. 불어난 물과 빨라진 물의 흐름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세 개의 물길을 내며 돌아 흐른다. 물 가운데로는 위쪽에서 떠내려 온 돌멩이들이 모여 삼각주도 만들고 작은 섬도 여기저기 생겨났다. 아이들은 타고 온 자전거를 내려놓고 바지를 걷어 올리며 첨벙거린다. 그들은 물길을 거스르지 않으며 물길을 따라 놀고 있다. 노는 애들을 한 명 한 명 손잡으라고 하면 그대로 물길이 될 것 같다.
작년 여름 영월 동강에 래프팅을 갔었다. 동강 어라연의 웅장한 협곡으로 푸르른 산세를 보며 내려오고 있었다. 하류쯤 와서 내려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물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거대한 삼림이 동강을 비단타래처럼 서리서리 풀어내고 있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물에도 길이 있다는 말을 들으며, 동강은 물길이 신비스러운 경치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수직 등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수직 등반은 고도의 집중력과 평형상태를 필요로 한다. 수직절벽을 보면 오를 수 없는 불가능함에 짓눌려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오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절벽 아래로 가서 어떻게 오를까 고민하며 길을 찾아내고 등반한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은 없고 불확실한 것만 있다면서.
나는 지금까지 나의 길을 제대로 찾아든 건지 잠시 생각해본다. 살면서 혹여 다른 사람의 물길을 방해한 건 아닌지. 나로 인해 물길을 돌려갔던 사람은 없었는지. 핸드폰의 전화번호 찾기를 열어보니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지나간다. 사소한 갈등으로 소식이 끊어졌던 사람, 너무 오래되어 연락할 수 없었던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한때 나의 길에 크고 작은 섬처럼 고운 눈으로 지켜봐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소통의 길은 있었는데 다만 가지 않았던 것이다. 창을 열고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물길 사이의 섬처럼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성지를 들른 순례자처럼 그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어본다. 남은 길을 떠나기 위해 느슨해진 신들메를 다시 고쳐 매야 할 것 같다.
조미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