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7-26 17:34


서서히 함락시키는 마귀의 궤계

큰 나무를 톱으로 벨 때를 생각해 보면 조금씩 톱질을 해 가면서 그 나무가 넘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쓰러뜨린다. 나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톱이 나무에 닿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그 나무는 넘어진 것과 같다.

마귀역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신앙을 가졌다고 해도 방심하여 악한 마귀가 한번 그를 넘어뜨리려고 작정한 궤계에 조금씩 자신을 내주다 보면 결국 껍데기는 멀쩡할지 몰라도 그 속의 신앙은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작부터 악한 것이 나를 엿보지 못하도록 보호를 받아야 하고, 시작부터 마귀가 우리의 믿음을 톱질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귀가 작전을 세울 때는 아주 여러 번에 걸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를 한다. 처음부터 “야!너 교회 가지 마라!예수 믿지 마라!” 하고 단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밀물이 서서히 들어와서 순식간에 물이 차듯이, 슬며시 이것저것 약점을 건드려 가면서 차츰차츰 나를 함락시키고 장악한다. 그러다 보면 여기서 싫증나는 일이 생기고, 저기서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 이 일도 의욕이 떨어지고, 저 일도 못할 이유가 생기고,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이 다 싫어진다. 한참 후에 가서야 어느 순간 ‘그렇게 겸손하고 열심히 충성했던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가. 이 모습이 내가 아닌데…’ 하며 자기 신앙의 현주소를 발견하게 된다.

마귀역사가 이미 나의 믿음과 충성과 기도를 방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도 우리는 전혀 모를 때가 많다. 설교를 들으면서 ‘아, 내가 신앙생활에 많이 게을러졌구나.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마귀는 그 생각대로 행동하게 놔두지 않는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를 보면 몸을 숙이고, 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다가간다. 토끼 제까짓 것이 얼마나 뛰겠느냐고 얕잡아 보지 않는다. 그러다가 토끼가 사냥 거리 안에 들어오면 재빨리 두 발로 토끼의 몸을 잡아채는 동시에 목을 꽉 물어 버린다. 작은 토끼를 잡는 데도 그렇게 신중하다.

마귀는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에 토끼를 사냥하는 호랑이보다 훨씬 더 철저하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매사에 적을 알고, 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나를 지켜내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 사소하게 여길 만한 어떤 것도 강력하게 대처해 이겨야 한다. 아무리 작은 병도 그것이 점점 커지면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아무리 작은 일도 그것이 커지면 나를 믿음에서 넘어뜨리고 신앙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세상이 나의 믿음을 시험할 때부터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설교를 듣고 잘해야지 다짐해도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환경 때문이다, 피곤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대지만 그 전에도 그런 환경이 있었고, 그 전에도 그런 피곤이 있었다. 그 전에는 그런 환경과 피곤에 얽매이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내 신앙생활이 적에게 점령당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 나를 서서히 함락시키고 지배하는 마귀역사를 보아야 한다. 마귀에게 끌려 들어가는 수렁 속에서 나를 건져내고 일으켜 세워 주실 분은 오직 예수뿐이다.

윤석전 목사(서울 연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