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구한말에 좋은 선교 매개체 역할"
입력 2011-07-26 10:24
[미션라이프]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등 커피 주요산지의 선교에 커피가 좋은 매개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구한말 한국 선교에도 커피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커피 애호가였던 고종과 선교사들이 커피를 자주 마셨고 제중원 설립 허가 등이 이런 자리에서 쉽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고종은 커피 애호가=커피선교공동체 ‘커피미션네트워크’의 윤선주 상임대표에 따르면 고종 황제가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 마셨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맛봤다. 러시아 베베르 공사의 처형인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의 권유로 접했다. 고종은 쓰면서도 강렬한 커피 맛에 매료됐다.
이후 1년 간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하면서 고종은 커피를 자주 마셨고 애호가가 됐다. 환궁한 뒤에도 커피의 맛을 잊지 못해 커피를 계속 찾았다. 가까이 하는 신하들에게 커피를 권하거나 하사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한말 외국인기록 4권’에 의료선교사 알렌이 궁중을 출입할 때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같은 만남을 통해 선교사들은 제중원(세브란스병원 전신)과 기독교 사학인 이화학당, 배재 학당 설립에 고종의 윤허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종은 국내 첫 궁중카페라 할 수 있는 정관헌을 세우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일본은 고종이 해외선교사와 접촉하는 것을 통제했다. 하지만 고종은 정관헌을 통해 선교사, 외국 공사와 자주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첫 커피 1890년 전후에 전래=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1890년 전후로 추정된다. 경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략 세 가지가 거론된다. 중국을 통한 유입이다. 1895년에 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커피는 1890년경 중국을 통해 국내에 유입됐다고 기록돼 있다. 두 번째는 일본을 통한 유입이다. 1888년 일본은 인천에 국내 첫 호텔인 대불호텔과 슈트워드호텔을 세웠다. 여기에서 커피가 판매됐다는 설명이다. 서양 선교사와 외국 공사들이 커피를 들여왔다는 설도 있다.
처음 국내에 소개된 커피는 ‘가배차’ 또는 ‘가비차’로 불렸다. 이는 영어발음에서 차용한 중국, 일본식 표기다. 중국이나 일본의 지방 도시에 가면 지금도 커피를 ‘가배’라는 표기한다.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가배두림’(??豆林)의 가배가 ‘가배차’(??茶)에서 유래됐다.
커피는 ‘양탕국’이라고도 불렸다. 서양에서 들여온 검고 쓴 맛을 내는, 마치 한약 탕국과 같다는 뜻이다.
윤 대표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감안할 때 커피는 우리 선교 역사에 중요한 매개였다”고 말했다. 그는 “커피미션네트워크의 비전이 우리가 커피를 통해 받아들인 이 복된 소식을 커피를 통해 다른 나라에 전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