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었지만 ‘앵커의 눈’ 뜨다… 시각장애 이창훈씨, 세계 첫 지상파 뉴스진행자로

입력 2011-07-25 22:21


이창훈(25)씨는 빛과 어둠도 구별할 수 없다.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생후 7개월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이씨와 가족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차근차근 정규 교육과정을 밟았고, 올 초엔 서울 숭실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25일, 그는 또래 친구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종 중 하나인 지상파 뉴스 앵커가 됐다. KBS가 지난 4월 ‘장애인 앵커’ 채용 계획을 밝힌 뒤 최근까지 진행한 전형을 통해서다. 523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었다. 국내에서 장애인이 뉴스를 진행하게 된 것은 이씨가 처음이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뉴스 스튜디오에서 위촉식을 가진 이씨는 카메라 앞에 앉아 뉴스 진행을 시연했다. 뉴스 원고가 점자로 찍혀 있는 점자 정보 단말기를 양손으로 훑으며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거침없는 목소리에 발음도 정확했다.

어머니 이상여(57)씨는 카메라 뒤에 서서 아들의 모습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취재진이 다가가 소감을 묻자 손만 내저을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엔 아들을 키우며 누구보다 다사다난했을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이씨는 “어머니께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미용실을 하시는데 이번 시험에 응시한 뒤 면접이나 카메라 테스트가 있을 때마다 제 머리를 만져주셨어요.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도 드리셨죠.”

이씨는 2007년부터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KBIC)에서 앵커로 활동해 오다 KBS 공고를 알고 ‘일단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원서를 냈다. 이후 뉴스를 찾아 들으며 실력을 키웠다. 롤 모델은 KBS 1TV ‘뉴스 9’를 진행하는 민경욱 앵커였다. “뉴스를 ‘청취’ 하는데 고음과 저음을 적절히 섞은 민 앵커의 목소리가 굉장히 생동감 있더라고요.”

이씨는 3개월간 실무 교육을 받은 뒤 계약직 앵커로 활동하게 된다. KBS는 뉴스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맡길 계획이다. 채용 과정을 총괄한 임흥순 KBS 과학재난부장은 “발음 및 표준어 구사 능력, 도전정신 및 발전 가능성 등 모든 평가 부문에서 이씨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이어 “이씨가 활동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보조 직원을 한 명 붙여 도울 계획이며, 점자 프린터 등도 구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인규 KBS 사장은 “2년 전 영국 BBC가 장애인 앵커를 1주일 정도 기용한 적은 있지만 정규 프로그램에 투입하기 위해 장애인 앵커를, 그것도 시각장애인을 기용한 것은 세계 최초인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장애인 앵커를 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