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고졸 채용 논란] 全 금융권에 “고졸 뽑아라” 정부 권고는 新관치?

입력 2011-07-25 18:26


정부가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에서 시작된 고등학교 졸업자 채용 계획을 증권·보험업계 등 전체 금융권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증권·보험사 등은 정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업무 특성과 관련, 현실화가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관치 금융’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학력 아닌 능력 위주 채용을=금융위원회는 지난 22일 금융투자협회, 생명·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은행연합회, 저축은행연합회 관계자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고졸 채용 계획을 제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25일 “학력보다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문화가 은행을 넘어 전 금융권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취지”라며 “강제 할당은 아니고, 자율적인 계획을 묻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열린 인사정책을 유도하는 정부의 의지는 굳다. 금융위 관계자는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꼭 대졸자를 쓰지 않아도 되는 업무가 있는 경우에는 고졸자 채용을 확대토록 권고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기업은행을 방문, 고졸 출신 행원들을 만나 격려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금융권은 일단 정부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금투협 증권지원부 관계자는 “학력차별 철폐라는 정부 입장에 공감한다”며 “사교육비 문제, 학력 과잉의 부작용 등까지 해결할 수 있는 취지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이미 고졸 출신 인력을 적극 채용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은 공개채용 전형 과정에 학력을 기재하지 않는 ‘열린 채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매년 30여명의 고졸 인력을 채용해 온 삼성증권은 2013년까지 종전대로 매년 고졸자 30∼40명을 뽑겠다고 밝혔다. 우리투자증권은 2013년까지 2년에 걸쳐 50여명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현실성 없는 권고, ‘신관치 금융’ 비판도=하지만 취지에도 불구하고 고졸 출신 채용 바람이 다른 금융권으로 쉽게 퍼져나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강하다. 제2금융권은 전국적으로 점포를 가진 시중은행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채용 여력에 한계가 있다. 실제로 상위 10개 증권사 중 삼성·우리투자를 제외한 8곳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고졸 채용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보험업계도 고졸 채용에 대해 기본적으로 검토하는 수준이다.

증권 업무의 특성상 까다로운 금융상품을 1대 1로 고객에게 소개해야 하는 만큼 학력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고졸 채용을 하지 않고 있는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단순 위탁매매 중심에서 자산관리로 사업구조를 바꿨다”며 “상고 출신 직원을 자산관리직으로 선임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현실성 없는 권고라는 평에서 나아가 ‘신관치 금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현재 금융권 노사 갈등의 핵이 되는 ‘신입행원 초봉 20% 삭감’도 2년 전 강제로 진행된 관치금융의 산물이었다”며 “시장 자율성을 무시한 밀어붙이기식 추진은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고졸 채용 계획을 밝힌 은행권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은행들은 은행연합회에 개별 고졸채용 인원을 공개하지 말 것을 공식 요청했다. 한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위에서 기한에 맞춰 채용 목표치를 내라니까 내기는 했는데, 당장 어떻게 맞춰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이경원 전웅빈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