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핀란드化 경계해야

입력 2011-07-25 17:42


이성계는 요동을 치라는 고려 우왕과 최영의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해 권력을 잡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그는 우왕을 쫓아내고 창왕을 옹립하며 세를 불려나갔다. 당시 중국 대륙은 격변기였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가 주원장이 세운 신흥 명나라에 밀려 중국 북쪽으로 내몰리며 명운을 다한 시점이었다. 반면 반란군 수장으로 몸을 일으킨 주원장은 파죽지세로 중국 대륙을 점령하며 위세를 떨칠 때였다.

이런 기회를 틈타 명나라를 쳐 외세의 개입을 영원히 차단하자는 것이 최영의 논리였다. 즉, 명이 원나라를 치기 위해 북방 경략에 집중하는 틈을 타 요동을 정벌하고 산해관에 터를 잡아 옛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었다.

명으로서도 고려와 원나라 모두를 상대하기는 힘들어 분명 고려에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상책이 되지 못한다는 등의 4불가론을 내세워 이를 반대했다. 어쨌든 이성계는 여기서 승기를 잡아 조선을 개국하는 동시에 사대(事大)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주변국 위세에 눈치 보다니

자기 나라보다 강한 국가나 세력에 복종해 이익을 챙기거나 생존을 도모한다는 사대주의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강대국 주변에서 생존하기 위한 사대주의란 지정학적으로 반도인 우리나라로서는 생존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중국과 같은 대국과 자존심 때문에 싸워봤자 이득 볼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대륙에 자리잡은 역대 왕조세력은 한반도를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멀게는 한나라에서부터 가깝게는 공산화된 직후의 중국까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반추해 볼 때 사대를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다. 마찬가지로 고려 충신 최영만 치켜세우고 이성계만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중국이 부쩍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나라 국방장관을 만나 맹방인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서해안의 불법 어획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해경에게 몽둥이와 칼로 대드는 행위는 주권을 무시하는 태도다.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정부의 자세가 한심스럽기도 하다. 북한의 소행임이 분명한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켜 이득을 보자는 노림수가 엿보이기까지 한다.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우리 정부 핵심 관계자에게도 바로 알리지 않아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다. 중국의 힘을 과대평가한 탓인지 알아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아래서는 대미 외교보다 대중 외교에 치중한다며 미국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적도 있었다. 강한 나라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작은 나라가 강대한 이웃의 눈치를 보며 모든 것을 알아서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핀란드화’라고 한다. 20세기 중반 핀란드가 강국 러시아를 두려워해 주권이 약화되는 것을 감수한 것을 말한다.

중국 관계 다시 정립하기를

1939년과 1944년 두 차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진 핀란드는 국토의 일부를 빼앗긴 뒤 생존을 위해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며 복종했다. 러시아가 승인하는 정당들만 정부에 참여할 수 있었고 대통령이나 각료 인선에서는 러시아의 사전 승인이 필수적이었다. 핀란드의 중요한 결정은 모두 러시아에서 이뤄졌다. 말이 독립국이지 종속국가나 다름없었다. 우리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 길을 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마침 우리나라와 중국 미국에 똑같이 내년에 정치적인 큰 변화가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우리도 수치스러운 핀란드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