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구본우] 길이 없으면 갈 수 없습니다

입력 2011-07-25 17:42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됐다. 연일 전력 수요가 사상 최대를 기록해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대지진 이후 이웃나라 일본은 올 여름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도 무더위 속에 일본처럼 전기 사용을 제한한다면 생활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상상을 초월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국가경제에도 역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지난 18일 고리에서는 의미 있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대용량 신형 원자로(APR1400)가 신고리 원전에 설치된 것이다. 바로 이 원자로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에 설치할 원자로와 같은 형식(1400㎿)으로, 우리나라를 세계 다섯 번째 수출국가로 만들어 준 핵심 기술이다.

하지만 국내로 눈을 돌려 전력설비 건설 환경을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전기를 생산해 최종 소비하기 위해서는 발전소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 송전선로를 이용해 전기를 수송하고 변전소에서 적당한 크기의 전압으로 조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체에 비교하면 보다 명확해진다. 먹기만 한다고 무조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맥을 따라 피가 잘 순환돼야 에너지를 발산하며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맥과 같은 생명줄 역할을 하는 것이 송전선로다. 아무리 세계적 기술과 막대한 예산(신형 원전 1기당 약 3조2000억원)으로 발전소를 건설한다 해도 수송과 분배를 책임지는 송전선로와 변전소가 제때 건설되지 못한다면 발전소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 앞은 안 된다’는 님비(NIMBY)현상 때문에 송·변전 설비가 발전소 가동 시기에 맞추어 건설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앞선 기술력과 운영 능력으로 최고 수준의 발전소로 건설되고 있는 신고리 원전의 경우만 보더라도 발전소 건설은 당초 계획대로 2013년 9월 준공을 목표로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송전선로는 민원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대 등으로 적기 준공이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만약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신고리 원전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을 경우 이는 여름철 전력 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져 일본, 중국과 같은 제한송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한국형 원전의 수출에도 악영향이 미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건국 이래 최대 수출이었던 UAE 원전 수주의 쾌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국내 원전의 효율적 운영과 안전성이 확보돼야 하며 더불어 송·변전 설비 등 전력설비 확충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전력사업이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우선 우리 국민들부터 대승적 차원에서 송·변전 설비 건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협조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길이 없으면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본우 한국전력 송변전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