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쓰레기의 공격… 우리 위성 우리 기술로 지킨다
입력 2011-07-25 19:25
지난 2월 우리나라 첫 정지궤도 위성인 천리안이 러시아 첩보 위성과 충돌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 상공 3만6000여㎞의 원 궤도를 지구 자전 속도와 같이 돌기 때문에 지상에선 항상 한 곳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리안을 포함한 대부분 방송·통신 위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천리안의 위성궤도(동경 128.2도)에 러시아 위성이 수㎞까지 접근한 것이다. 미국의 우주물체 감시센터에 등록돼 있지 않은 첩보위성이었다. 당시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관제팀이 천리안 위성을 황급히 러시아 위성과 10㎞ 이상 떨어지게 조정(회피기동)해 가까스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지구 주변 우주 공간에는 인공위성을 비롯해 ‘우주 쓰레기’라 불리는 각종 잔해물(발사체 부산물, 우주선 폐기물, 파괴된 위성부품), 소행성 및 유성 등 수많은 우주 물체가 떠돌아다닌다. 따라서 위성과 위성, 위성과 우주 잔해물이 충돌할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실제 2009년 2월 미국의 민간통신위성 이리듐33호와 고장 난 러시아 군사위성 코스모스2251호가 충돌했다.
때문에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우주 선진국들은 자국 위성 보호를 위해 일찌감치 우주 감시 체계를 가동했다. 한국은 그동안 우리가 쏘아 올린 위성 외에 기타 미확인 위성이나 우주 잔해물 정보는 대부분 미국 북미방공사령부가 제공하는 자료를 받아 사용했다. 대한민국의 우주 영공을 지나는 우주 물체를 전문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상시 감시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한국천문연구원과 항우연이 올 초부터 우주 물체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우주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독자적인 감시체계 개발에 돌입했다. ‘국가현안 프로젝트(NAP·National Agenda Project)’로 이름이 붙여진 이 사업에는 2016년까지 240억원이 투입된다.
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박장현 박사는 25일 “우주 물체에 대한 감시·정찰은 우주와 정보시대 국가안보를 위한 필수 시설”이라며 “대미 의존에서 탈피해 자주적 우주정보 생성 및 획득이 가능해진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천문연은 우선 국내 개발 가능성이 높고 예산이 비교적 적게 드는 레이저 추적시설을 2013년까지, 전자광학(망원경) 감시시스템을 2016년까지 순차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이후 공군과 함께 고난도 기술과 많은 예산이 필요한 레이더 감시시스템까지 개발, ‘삼박자 감시시스템’을 동시에 가동함으로써 2017년 이후 상시적 국가 우주물체 감시 네트워크를 구축·운용하는 게 최종 목표다. 천문연은 안정적인 우주 물체 추적 감시를 위해 국내 뿐 아니라 2013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몽골 터키 카자흐스탄 등 5개국에 감시관측소를 설치할 계획도 세웠다.
현재 우주 공간에는 3500여개의 인공위성이 떠 있고, 매일 700여개의 위성이 한반도 상공을 통과한다. 특히 고도 3만6000㎞ 상공 정지궤도 위성 벨트에 대한 감시가 중요하다. 각국에서 위성을 쏘아 올리면서부터 우주공간은 영공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위성을 발사할 때 충돌 위험성과 주파수 혼선 우려 때문에 발사궤도 등에 대한 정보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사전 통보하고 승인을 받는다. 고유의 위성 점유궤도를 부여받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주 공간은 2도 간격으로 하나씩 위성이 들어갈 만큼 비좁다. 통신위성 간 간섭현상으로 위성들은 일정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공간이 부족해지니 미확인 위성이 군사적 목적 등으로 다른 위성 궤도에 몰래 들어와 활동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때문에 위성끼리 충돌 가능성은 물론 국가간 영역 다툼이 생길 여지도 많다. 과거 러시아는 천리안이 있는 동경 128.2도 상공이 자국에 우선권이 있는 궤도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자체 감시 시스템을 갖추면 미확인 위성의 궤도 추적을 통해 임무 파악과 함께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 잔해물과 자국 위성의 충돌을 방지하는 데도 우주 물체 감시시스템은 유용하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구 궤도에는 고장 난 위성 3396기와 발사체(로켓) 상단 및 기타 부품 1만2968개 등 모두 1만6300여개의 우주 쓰레기가 떠돌고 있다. 이런 우주 쓰레기는 대부분 지구 상공 850∼1500㎞의 저궤도에 떠 있다. 일부는 우주선이나 국제우주정거장(ISS) 비행 고도인 270∼460㎞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사고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2호도 지구 상공 685㎞에서 돌고 있어 이런 충돌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 박사는 “우주 잔해물 충돌 후보 감시를 통해 충돌예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감시 관측 확률을 80%까지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