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26·끝)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의 사랑 메아리
입력 2011-07-25 22:08
길거리 공연 516회 9500만원 성금모아 난치병 41명 수술지원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사각지대를 무너뜨려 보자는 생각에서 길거리 공연을 시작하게 됐지요.”
경북 포항시 북구청 복지환경위생과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권성호(44·7급)씨는 지역에서 성실하기로 소문난 모범공무원이다. 조직 내에서도 탁월한 기획력과 열정적인 업무추진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듣는다.
실제로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따뜻한 사람’임을 실감할 수 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바로 ‘행복 바이러스 전도사’이다.
권씨는 한 달에 두 번 정도씩 자체 결성한 음악밴드를 이끌고 거리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최근엔 16일 오후 8시부터 10시30분까지 포항 북부해수욕장에서 공연을 가졌다. 400여명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고 모금함에는 63만3000원이 모였다.
권씨가 길거리 공연을 시작한 것은 9년 전인 2002년 12월부터다. 권씨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난치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모두 516 차례의 공연을 가졌고, 성금 9500만원을 모아 난치병 아이들 41명에게 수술비로 전달했다.
2001년 12월 어느 날 권씨는 업무 차 방문했던 포항시내 편모가정의 막내 혜진(당시 5세)양이 얼굴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든 아이를 도와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2000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의사협회 등에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병원을 직접 찾아가 통사정도 해 봤지만 시원한 해결책은 없었다.
고민 끝에 권씨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러서라도 성금을 모아 아이의 치료비를 마련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권씨의 따뜻한 가슴을 잘 헤아린 후배들은 흔쾌히 동참하겠다며 나섰고, 이내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밴드가 결성됐다.
공연을 위한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뒤 2002년 한파가 몰아치던 12월 16일 마침내 포항 죽도시장 앞에서 첫 길거리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시작한 첫 공연이었다. 모금함에는 160만원이 들어 있었다. 권씨는 희망을 발견했다. 이들의 적극적인 공연활동으로 마침내 2000만원의 수술비가 전달됐다. 혜진양은 무려 13번에 걸친 수술 끝에 예쁜 얼굴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현재 중학교 1학년인 혜진양은 장차 가수가 돼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말한다.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 회장이면서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권씨는 따로 음악공부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타고난 음감(音感)으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공연이 없는 주말이면 권씨는 직접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자원봉사를 한다.
24년째 자원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권씨에게 봉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다. 등록된 권씨의 자원봉사 시간은 1000시간이 넘는다. 등록되지 않은 시간까지 합치면 그의 봉사활동은 2000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남을 정도다.
권씨는 강대윤(당시 40세)씨를 잊지 못한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절망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강씨는 첫 만남 당시 대화를 거부하면서 싸늘한 시선만 보냈다고 한다. 강씨는 3번째 방문에서 말문을 열었고, 결국 권씨를 따라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통해 신경이 살아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희망의 끈을 발견한 강씨는 3년 동안의 재활치료 끝에 마침내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희망의 싹을 틔워준 권씨를 만나기 위해 포항시청까지 2시간을 걸어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권씨는 시각장애를 지니고 있는 팔순 노모를 모시고 산다. 그래도 그는 늘 “어머니가 저희들을 모시고 산다”고 말할 정도로 효자이기도 하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의 아내 김진월(40)씨도 포항종합사회복지관장으로 일하고 있어 부부가 모두 지역사회 복지향상에 헌신 중인 셈이다.
권씨 가족은 연간 16차례 정도는 중증장애인시설, 노인요양시설, 무료급식소, 지역문화행사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더불어 사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2명의 자녀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육’이기도 하다.
사각지대에 방치된 복지수급자들에게도 권씨는 ‘희망전도사’였다. 9년 동안이나 죽도시장에 방치된 할아버지를 목욕시킨 뒤 들꽃마을에 입소시켰다. 쓰레기장에 거주하고 있던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을 영구임대아파트로 입주시키기도 했다. 그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병을 앓고 있거나 장애를 안고 있는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극구 숨기고 살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를 감추지 말고 들춰내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아무 보상 없이 지속적으로 행위가 이뤄져야 진정한 봉사라고 할 수 있다”며 “노래하는 좋은 사람들의 공연과 난치병 아이들에 대한 성금 지원은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글·사진 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