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정교회 지도자 양신페이 소천

입력 2011-07-25 15:24


중국 가정교회의 원로지도자인 양신페이(楊心斐·사진)가 지난 23일 오전 노환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고 중화선교회가 25일 밝혔다.

언리(恩立)로 불리기도 한 그는 전도자이자 음악가로 활동했다. 1928년 10월 24일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의 4대째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양신페이는 푸저우(福州)음악전문학교를 거쳐 1953년 상해음악학원을 졸업한 뒤 항저우(杭州)시문화국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58년 7월 27일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삼자회)’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돼 16년간 감옥생활과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마오쩌둥의 초상화앞에 무릎을 꿇을 것을 강요받았지만 완강하게 거절해 머리카락을 모두 잘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74년 1월 샤먼으로 돌아온 뒤 수많은 차세대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양육했다. 매년 160명이 그를 통해 세례를 받았다. 2003년 ‘밤의 노래(夜間的歌)’라는 제목의 간증집을 출간했다.

그는 삼자회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했다. “이교도의 바람이 이미 교회 안으로 잠식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위치와 신앙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결코 삼자회에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조국을 매우 사랑하며 국가 법률을 위반한 적도 없어요. 그러나 그들은 나를 비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과 삼자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화선교회 관계자는 “샤먼에서 전통 가정교회와 도시교회 간 리더십 계승과 협력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원활했던 이유 중 하나가 양신페이라는 여걸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며 “그는 40여개의 가정교회를 세웠고 그가 인도하는 성경공부 모임에는 1000명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200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전 세계 화인 ‘중국복음대회’에서 중국대륙을 위해 대표 기도를 인도한 게 외국에서 마지막 일정이었다. “주님, 중국대륙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있어 구원을 받지 못했나이다. 아직 하나님의 기도소리를 듣지 못했나이다. 우리의 국가가, 우리의 땅, 우리의 잃어버린 영혼들이 어떤 희망도 없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나이다. 주여, 당신의 사람들을 선발해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소서. 주여, 그들이 복음을 듣고 당신의 면전에서 회개하게 하소서.”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