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性폭력’ 비상구가 없다… 적발돼도 합의 강요·조직적 은폐

입력 2011-07-24 21:44

A상병은 지난해 4월 야간 경계근무를 하던 중 함께 있던 후임 병사에게 성행위를 강요했다. “구강 성교를 해주지 않으면 다른 분대원들도 괴롭히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A상병은 이 병사의 성기를 대검 손잡이에 끼우고 고무링을 감는 ‘성고문’까지 저질렀다. 이 같은 행동은 두 달이나 계속됐다.

B병장은 2009년 1~4월 사이 80여 차례나 같은 생활관 소속 병사 4명에게 성추행 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후임병을 침대에 눕히고 성기에 치약을 바르거나 샴푸를 뿌려 거품을 낸 뒤 손으로 만지기도 했다.

군인권센터가 24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군 사법당국에 접수된 군인 성범죄 사건을 분석·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무려 363건의 군인 성범죄가 발생했으며 71건은 군인 간 성범죄였다. 지난 4일 총격사건이 벌어진 인천 강화군 해병대 2사단 소속 해안경계부대에서도 고참이 후임 병사의 성기에 석유 성분의 분사식 모기약을 뿌리고 불을 붙이는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성범죄가 더 큰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C하사는 2009년 3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병사 8명을 상대로 성기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했다. D중사도 자신의 소대에 근무하는 일병을 사무실과 집으로 불러내 “포상휴가를 보내주겠다”며 강제로 구강성교를 시켰다.

2009년 10월 D원사는 하사관급 간부들과 부부동반 회식을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모 중사 부인의 팔짱을 끼고 “딸 같다” “앞으로 아버지처럼 친하게 지내자”며 가슴을 만졌다. 같은 해 6월 E하사는 동료 여 하사의 집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가 성폭행하기도 했다. F하사는 후임 상병을 침대에 눕히고 전기 충격기로 무릎을 찌른 뒤 엉덩이에 로션을 발라 성추행하다 적발됐다.

사정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군인 성범죄의 절반 이상이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법정에 기소되지도 않은 채 ‘유야무야’식으로 끝난 것으로 나타났다. 군사법원에 접수된 363건 중 52%에 해당하는 173건이 군 검찰로부터 ‘공소권 없음’이나 기소유예 등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군인 간 성폭력도 절반에 가까운 48%가 처벌되지 않았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피해가 분명한데도 공소제기가 안 된 케이스를 보면 거의 다 합의를 종용받았거나 압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군인 성범죄 실태가 심각하지만 군 사법당국의 처벌의지는 너무 약하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