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재개발 철거 현장은 ‘인권 사각지대’… 용역 직원 욕설·폭행 빈발, 여성들 추행까지

입력 2011-07-24 18:34

도심 재개발 지역 거주민이 철거 현장에서 용역업체 직원들로부터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와 경찰은 개인 간 분쟁이라는 이유로 직접 개입을 꺼리고 있다.

인권위는 올 들어 재개발 지역 주민이 철거 용역업체로부터 욕설과 폭행, 무리한 철거를 당했음에도 보호 조치가 없었다며 경찰과 관련 공무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진정이 10건에 달한다고 24일 밝혔다.

현실적인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서울 명동 3구역 상가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 “강제 철거 과정에서 남자 용역 직원이 여성 시위자를 끌어안는 등 추행을 했는데도 현장에 있던 경찰관은 수수방관했다”며 남대문경찰서 등을 상대로 진정을 냈다. 배재훈 대책위원장은 “용역들의 행패는 최근까지 네 차례나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서울 상도동 재개발 지역 주민 24명은 “명도집행 과정에서 34가구가 거주하고 있음에도 용역들의 강제 철거가 진행됐다. 동작경찰서는 철거를 용인했고, 서울지방법원은 집행관 파견 의무를 저버렸다”며 집단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이 같은 진정 내용은 인권위의 ‘강제 철거 시 준수돼야 할 인권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인권위는 2009년 ‘야간 강제 퇴거를 금지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의 경우 퇴거 완료 후 담당 공무원의 입회와 감독 하에 철거를 진행할 것’ 등을 담은 인권원칙을 제정하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 등에게 관련 법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철거 현장의 인권 침해에 직접 개입하기는 힘들다는 게 인권위의 입장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용역 업체와 철거민 사이 갈등은 사인(私人) 간의 일로 인권위 조사 대상이 아니다”며 “대신 경찰이나 해당 관청에 피해 사례에 대한 구제 권고가 필요한지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경찰 역시 적극적인 개입을 피하고 있다. 대부분의 강제 집행이 민사소송 결과 이뤄지기 때문에 섣부른 개입이 오히려 형평성을 어기게 된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서울의 한 철거 현장을 관할하는 경찰관은 “특정 세력을 편드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개입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