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최정욱] 한국 최초 조선사의 책임

입력 2011-07-24 19:09

‘표해록’은 조선 성종 때 제주도 경차관(지방 파견 관리) 최부가 고향에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표류한 뒤 한양으로 오기까지 135일간 보고 겪은 일을 기록한 책이다.

당시 제주도 근해와 남중국해에서 14일을 표류하던 최부는 “우리 배는 단단하다. 배가 부서지지 않는 한 살아날 길이 있다”며 일행을 독려했다. 결국 최부 등 43명은 중국 저장성에 도착, 우여곡절 끝에 항저우와 베이징 등을 거쳐 귀국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을 압도한 조선 군함 판옥선처럼 일반 선박도 견고하게 지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전통을 이어 ‘명품 선박’으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에서 한진중공업은 맏형으로 통한다. 1937년 부산 영도에서 조선중공업으로 출범한 이듬해 국내 최초로 철강화물선을 건조했다. 대한조선공사 시절인 74년 국내 최초 대형 수출 선박인 3만t급 석유제품운반선을 미국에 인도했고 77년에는 역시 처음으로 석유시추선과 자동차운반선을 수출했다. 89년 한진그룹에 인수된 뒤에도 동양 최초로 멤브레인 타입 LNG선을 건조했다.

2005년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뒤 한진중공업은 첨단 선박을 지어온 영도조선소가 좁고 도크도 1개여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2006년부터 필리핀에 약 1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선박을 지을 수 있는 수빅조선소를 2009년 완공했다. 하지만 조선경기 침체로 별다른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최근 경기 회복으로 국내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선박을 싹쓸이 수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진중공업에서는 대형 수주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노사가 조업 재개에 합의한 직후인 이달 초 한진중공업은 영도조선소에서 중형 컨테이너선 등 6척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지난해 12월 사측이 영도조선소에 2년여간 신규 수주가 없다며 400명을 정리해고하기로 해 촉발된 것임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사측은 “파업으로 발주를 꺼리던 선주들이 계약 체결에 나선 것”이라고 했지만, 상당수 노동자들이 해고된 상황을 기다려온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이 회사 일부 조합원들은 경영전략 실패를 노동자의 희생으로 막으려 한다며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국회 청문회 불참 등 손을 놓고 있다. 하지만 수주가 재개된 만큼 정리해고 명분은 약해진 셈이다. 한국 최초 조선사를 지탱해온 노동자들을 살리는 데 사측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최정욱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