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전공 지휘자 구자범 “나는, 또다른 니체를 만난다”
입력 2011-07-24 23:09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음악으로 옮기면서 책에 있는 걸 그대로 갖다 쓰지 않고 재구성했습니다. 이야기를 만든 거예요. 슈트라우스와의 독일여행이라 할까요.”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선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공연이 열린다. 현대 지성의 대표주자 니체, 니체를 옮긴 슈트라우스. 어쩌면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지휘할 사람으로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경력을 쌓은 구자범(41) 지휘자 이상의 브랜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일까. ‘차라투스트라…’는 한국에선 좀처럼 연주되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 악보를 보여주며) 여기 보면 연주자가 100명 이상이 필요하니까 국내 일반 오케스트라의 규모로는 하기가 어렵고, 클래식이긴 하지만 현대에 근접한 작품이기 때문에 테크닉 면에서도 어려워요. 그래서 다들 잘 안 하죠.” 그리고 덧붙인다. “잘 알려진 곡을 하는 것은 재미가 없어요. 그런 건 음반으로 들어도 되고. 그런데 이런 현대적인 음악은 음반으로 들어선 재미가 없거든요. 현장에서 들어야 이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죠.”
21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만난 구 지휘자는 “연주회에 대중적인 곡을 살짝 끼워 넣거나 하는 일은 안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말은 어떤 지휘자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말은 구자범만 할 수 있는, 구자범이어서 무게가 실리는 말이다.
“헤겔처럼 인간 이성을 중시했던 철학적 흐름과 니체의 파격적인 사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시절이 있었어요. 대학원 입학 면접 때 갈피를 못 잡아서 공부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니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겠어요. 니체의 ‘초극’ 개념이 인간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슈트라우스의 니체 해석을 구자범이 해석한다’는 사실이었다.
“악보에 침묵 이외의 아무것도 없는 존 케이지의 ‘4분33초’라는 곡을 음악가들은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관객들에게 온갖 소음을 내도록 유도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완벽한 암흑 속에서의 침묵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너지가 최저상태가 되는 절대온도인 0도K는 섭씨로 영하 273도이고, 1도를 1초로 계산하면 4분33초가 되기 때문이라는 학설을 설명하며 “하지만 케이지가 악보에 그렇게 써 놓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누구나 해석을 할 수 있는 거죠.”
공연 하루 전인 27일 그는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직접 피아노를 치며 관객들에게 작품 설명을 할 예정이다. “공연 프로그램에 적히는 평론가의 글들은 막상 제 해석이랑 다를 때가 많아서요.”
그는 어린 시절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닌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 시절에 대해 물었더니 “그때 말 하면 건방진 놈이라고들 해서 안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도 덧붙였다. “저는 음악 듣고 악보에 음표 옮기는 일을 받아쓰기 하는 것처럼 누구나 당연히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 오히려 남들을 이해하지 못했죠. 전 그림을 못 그려요. 보이는 대로 그리라는데 안 그려져요. 나중에야 내가 제대로 못 보는 것처럼 남들도 제대로 못 듣는다는 걸 알았죠.”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만하임국립음대 대학원 지휘과를 마치고 탄탄대로를 걷다가 돌연 아무런 음악적 연고가 없는 한국으로 돌아와 스타 지휘자로 급부상했다는 식의 독특한 이력은 그에게 아무 일도 아닌 듯했다. 저녁 때 먹는 맥주와 안주 외에는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는다거나, 같은 스타일의 옷을 여러 벌 사서 그것만 입는다거나 하는 일상의 기행에 이르면 이야기책에서 보던 기인이나 위인전 속 괴짜 천재를 연상케 했다.
그는 솔직하기도 했다. “이번 연주는 저의 자기고백적인 연주회이기도 해요. 문제는 오케스트라에 (함께 호흡을 맞춰온 단원이 적고 객원 연주자가 많아) 제 생각을 이해하고 따라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건데. 해 봐야 알겠죠.”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