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창우 (18) 인니 쓰나미 피해 지역서도 의료 봉사

입력 2011-07-24 18:00


2005년 1월 20일 나와 아내, 아버지, 한양대 의대 외과과장이던 동생, 간호사 등 11명의 선교대원이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 지역으로 향했다. 현지 감리교회 감독이 기독교대한감리회에 긴급 구호요청을 한 것이다. 광림교회는 5만 달러의 구호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장인어른은 “이왕 도와주는 김에 수재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도와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우리 부부는 정기적인 선교뿐만 아니라 구호 활동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확신하고 흔쾌히 결정했다.

우리는 싱가포르를 경유해 인도네시아 메단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선 군용 특별수송기를 타고 기아대책 구호팀과 함께 록셈마웨로 향했다. 군용기에서 내리고 보니 나무와 집이 뒤엉킨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약품을 찾아 피해지역으로 향하려는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짐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온 약품 꾸러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잘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비행기 탑승 때 짐을 싣는 게 상식 아닙니까?” 사람만 탑승시키고 짐은 하나도 싣지 않았던 것이었다. 2시간 동안 공항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짐꾼이 깜박 잊고 싣지 않았나 봅니다. 내일까지 기다려 보세요.” “이보시오! 우린 당신네 국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24시간 넘게 이곳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별 수 없어요.”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냥 기다리세요.” “지금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이 있어요. 그 약품은 그 사람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겁니다.”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고요.”

공항 근무자들이 비협조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성 이슬람 지역으로 반정부군들이 활동하는 곳이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마지못해 이곳을 지원해주는 분위기였다.

약품이 없으면 선교대원이 이곳까지 온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일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제시간에 약품이 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우리 일행은 풀이 죽어 숙소로 이용하기로 약속한 비륀감리교회로 향했다. 피로감과 허탈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세상에, 원장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뭐죠?” 교회 사택에 들어갔던 간호사가 뛰쳐나왔다. “뭔데 그래?”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온 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약품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의료품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섬마을 오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입이 딱 벌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의 동족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대만에 거주하던 의사가 약품을 한 트럭 싣고 온 모양이었다. 혼자 치료하다가 한 박스만 쓰고 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웬만한 종합병원이 사용할 양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간 것에 비해 20배는 족히 넘어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제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군요. 몇 시간 전에 공항에서 화를 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이곳까지 불러들이셨군요.’

의료선교팀은 곧바로 주사기와 고무장갑 수액 소염제 항생제 등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야, 이건 정말 하나님의 종합선물 세트다! 하하.”

저녁식사 후 선교대원은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범사에 감사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며 회개의 기도를 했다. 다음날 우리는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캠프로 달려갔고 이슬람 회당 처마 밑에 간이 진료소를 차렸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