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 휩싸인 그들을 감싸줄 손이 필요하다”… ‘노숙인 퇴거’ 발표 후 서울역 안과 밖

입력 2011-07-22 19:10


“더 이상 갈 곳도,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병든 사람들을 정부가 내몰고 있습니다. 더위는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추위가 오면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20년째 노숙인 사역을 해 오고 있는 예수사랑선교회 대표 김범곤 목사는 어이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울시가 다음달 1일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몰아내는 것은 부적절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노숙인 사역을 하는 다른 목회자들도 뚜렷한 대책 없이 노숙인을 몰아냈을 때 오히려 부작용이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22일 서울역에서 만난 김 목사는 “서울역 노숙인들 때문에 시민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 없이 쫓아내는 것도 무책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목사는 특히 올 가을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추위가 찾아오면 갈 곳 없는 노숙인 가운데 일부는 생명마저 잃는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김 목사는 선교회가 세운 서울역 인근 사랑의등대교회에서 매일 오전 6시와 오후 7시에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교회를 찾는 노숙인은 하루 700∼800명이다. 많을 때는 1000명 이상이 방문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서울의 여러 ‘쉼터’에서 다른 노숙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자활을 위해 애쓰지만 상당수는 서울역, 영등포역, 광화문 지하도 등을 떠돈다.

그는 “노숙인들은 자활 의지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쉼터에서 생활하기를 거부한 경우”라며 “이들을 쉼터로 분산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서울역이 안 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노숙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들이 억지로 쉼터에서 지내게 되면 새 삶을 꿈꾸며 자활을 위해 노력하는 다른 노숙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역시 서울역권 중림동 소중한사람들교회에서 사역에 힘쓰고 있는 이응국 전도사는 불미스러운 일이 빚어질까 걱정하고 있다. 서울역을 떠나 배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전도사는 “알고 보면 물의를 빚는 노숙인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알코올 중독자이긴 하지만 대체로 얌전한 노숙인 가운데 일부는 쫓겨났다는 기분에 휩싸여 감정이 격해질 우려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노숙인이 이미 다른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사람들과 부딪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20여년 동안 노숙인 봉사를 하는 김영춘(56)씨는 “많은 목회자가 노숙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변화시키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노숙인 사역자들이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진정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