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승주] 루퍼트 머독

입력 2011-07-22 18:36

최근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영국 신문 ‘더 선’ 인터넷판에 머독의 사망 기사가 떴다. 그가 자택 정원에서 숨졌다는 내용이다. 기사를 클릭하자 곧 해킹집단 룰즈섹의 트위터로 연결됐다. 휴대전화 도청 사건을 일으킨 언론사의 사주 머독에 대한 해커들의 야유인 셈이다.

지난 19일 영국 하원 청문회에 나온 머독은 노련하기는 했으나 위풍당당함은 없었다. 의원들의 질문에 귀가 잘 안 들린다는 듯 머뭇거릴 때는 그저 80대 노인일 뿐이었다. 청문회 도중에는 “당신은 탐욕스러운 백만장자”라고 소리치며 달려든 한 남자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했다. 그는 “내 평생 가장 부끄러운 날”이라고 반성했지만 끝내 “직원들의 해킹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청문회를 마무리하고, 자신을 테러로부터 구한 아내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돌아갔다.

머독은 아내의 강 스파이크 한 방에 시련을 툭 털어 버린 걸까. 그는 최정예 변호사들을 고용해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여론을 형성하는 온라인 공간에선 이미 죽은 자나 다름없어 보인다. 머독은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200개가 넘는 유력 신문 방송을 거느리며 영토를 넓혀왔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황제인 셈이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어 보였던, 결코 저물 것 같지 않았던 머독의 나라는 왜 무너지고 있을까. 언론의 정도를 걷지 않은 도청사건, 그 후 꼬리를 물고 이어진 거짓말이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다. 또 하나, 부패한 언론의 비리를 끈질기게 밝혀낸 또 다른 언론의 집념도 중요한 원인이 됐다.

런던 경찰이 2007년 이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했을 때 대부분의 언론은 침묵했다. 그러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달랐다. 4년 동안 사건을 파헤쳐 수면위로 기사를 건져 올렸다. 닉 데이비스 기자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동료들이 있었고,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앨런 러스브리저 편집장이 있었다. 앨런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타임스(NYT)에까지 취재협조를 요청했다. 결국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고, 머독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청문회에 나와 고개를 숙였다.

언론의 부끄러운 얼굴을 보게 한 사건이지만, 이 스캔들을 폭로한 것 또한 언론이었다. 비리로 얼룩진 사건에서 동시에 저널리즘의 희망도 본다.

한승주 차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