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뛰는데 당국은 ‘가격’ 압박… 기업들 “죽을 맛”

입력 2011-07-21 21:26

정부가 통신·정유업계에 이어 식품·유통업계를 상대로 가격 압박에 나서자 관련 업체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일 ℓ당 100원 할인이 종료되면서 기름값이 오르자 정유사를 압박한 데 이어 이번에는 식품·유통업체를 타깃으로 삼았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업체 대표들은 22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윤상직 지식경제부 1차관과 조찬 간담회를 갖는다. 간담회에는 박인구 한국식품공업협회장을 비롯해 농심, 롯데제과, 해태제과, 빙그레 대표이사와 오리온 부사장이 참석하고 최명철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과장 등이 배석한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아이스크림, 과자, 라면 등 최근 오픈프라이스제가 해제된 품목에 대해 합리적으로 권장소비자 가격을 책정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물가 안정에 협조해 달라는 의미다. 지난 14일에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대표가 윤 차관과 만났다.

식품업체들은 원가가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데 정부는 무조건 누르려 한다고 하소연한다. 간담회에 참석하는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올 상반기 설탕, 밀가루 가격이 8∼9% 올라 비스킷, 스낵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며 “원가 상승분을 고려하면 추가로 올려야 하지만 정부가 직접 물가잡기에 나선 요즘 같은 분위기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당장 간담회에서 결론이 나지는 않겠지만 향후 권장소비자 가격 책정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만들어지면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도 업체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식품업체들이 찾아와 ‘원가 상승 때문에 제품 값을 올려야 하는데 정부는 올리지 말라고 해 죽겠다’고 아우성”이라면서 “CEO가 실적에 따라 자주 바뀌다 보니 업체로선 가격을 인상해서라도 실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밀가루, 설탕, 과자 값은 줄줄이 올랐다. 지난 3∼4월 국내 제분업체는 밀가루 출고가격을 평균 8.6%, CJ제일제당 등 제당업체는 설탕값을 9% 인상했다. 이어 롯데제과는 5월 마가레트, 꼬깔콘 등 22개 제품군 출고가를 평균 8% 인상했고 농심은 새우깡과 양파링, 조청유과 등 15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8% 올렸다. 오리온도 포카칩, 초코칩쿠키 등 13개 품목 출고가를 11∼25% 인상했다.

식품 및 식품소재 업체들은 원재료 인상을 전부 가격에 반영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소비자들 시선은 곱지 않다. 회사원 이시윤(28)씨는 “과자나 커피 값은 항상 오르기만 한다”며 “원재료 가격이 떨어졌다고 제품 가격을 내리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회사 구내식당들도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구내식당은 다음달부터 점심값을 3850원에서 4000원으로 3.9% 올리기로 했다. 구내식당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에 불가피하게 값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병원, 공장 등 전국 400여곳의 급식을 담당하고 있는 한 대형 업체는 최근 80여곳과 재계약을 하면서 가격을 2800원에서 3200원으로 400원 올렸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