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고마운 안내자

입력 2011-07-21 19:21


주룩주룩, 며칠째 장맛비가 긋다 내렸다 반복했다. 여수에 가는 날은 괜찮겠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당일 아침, 눈뜨니 희망이 주룩주룩 장맛비에 떠내려가고 없었다. 이를 어쩐다. 이러다 폭우라도 쏟아지면 여수까지 어찌 내려가나? 나는 불안에 푹 젖어 출발장소로 갔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니까 운전대를 잡은 이가 큰소리쳤다. “내 이름 때문에 내가 가는 곳엔 비가 그쳐요. 걱정 마세요.” 이름이 선희, 발음 나는 대로 하면 ‘써니’니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제일 불안해하던 내가 웃자 써니는 내비게이션을 켜며 “세 여자 말을 잘 들으면 인생이 편하다는데 들어봤어요?” 우스갯말을 던진다. 내친김에 내 불안을 더욱 멀리 날려보낼 작정인 듯했다. 세 여자란 엄마, 아내, 내비게이션녀라는 말에 우리는 맞아 맞아 손뼉을 쳤다. 특히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 여성의 말을 안 들으면 정말 고생한다며 깔깔거렸다.

우스갯말대로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말을 잘 들으며 차를 몰았다. 덕분에 중간 중간 엄청 쏟아진 폭우를 뚫고 안전하게 여수까지 갈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녀는 참 친절한 길 안내자였다.

불확실한 우리 인생길에도 그런 안내자가 있기를 많은 사람이 바란다. 어떤 이는 그런 안내자를 책 속에서, 어떤 이는 선인들 발자취들 중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안내자는 신이 아닐까? 틀린 길을 가도 친절히 다른 길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처럼 신께선 우리 잘못을 나무라지 않고 늘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리라.

빗속을 오로지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해 달린 탓에 예상보다 사뭇 늦게 여수에 도착했다. 일을 마치니 5시가 넘었다. 멀리까지 왔는데 한 군데라도 구경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충청 이북 쪽에는 계속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예보에 아쉬움을 접고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작동을 안 하는 내비게이션. 멀고 먼 남도 끝에 우리를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밤길에 빗길에 게다가 초행길에 어떻게 서울까지 가나? 우리는 불안한 마음에 내비게이션을 고쳐줄 서비스센터를 찾아 헤맸다.

길 안내자에 불과한 내비게이션의 외면에도 불안해 안절부절 못하는 우리다. 어느 날 갑자기, 언제나 친절히 이끌어 주던 신께서 우리를 인생길의 변두리에 뚝 떨쳐버리면 불안은 극에 달하겠지? 숨도 턱턱 막힐 거다. 내비게이션을 고치는 일에도 이리 저리 헤맸듯 우리를 계속 이끌어 달라며 신의 옷자락이라도 잡고 졸라야 할 거다.

내비게이션 없이 완전히 낯선 곳에서 서비스센터를 찾기가 그렇게 힘들 줄이야. 한 시간 넘게 헤맨 뒤에야 다행히 고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비 오는 밤길을 달려 무사히 목적지 품에 안겼다.

하찮은 내비게이션도 이처럼 안전하게 길을 안내해 주는 걸 보면 사랑하는 신께서는 더욱 안전하게 우리 인생길을 이끌어 주실 것이 분명하다. 가끔 고장이 나는 내비게이션과 달리 주님은 완벽한 분이니까.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