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정치권, 잦아진 재벌 때리기 왜?… 상대적 박탈감 ‘서민 표심’ 끌어안기
입력 2011-07-21 18:56
정치권이 연일 재계를 강하게 옥죄고 있다. 직격탄에 가까운 여야 의원들의 대기업 비판 발언이 요즘 봇물을 이룬다. 정치권은 이미 지난달 국회 지식경제위의 ‘대·중소기업 상생 공청회’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경제단체장들이 출석을 거부하자 “국회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한 행태”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가 최근 들어 다시 ‘재벌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왜 그럴까.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중소기업의 몰락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위험수위를 넘은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통한 편법·불법 상속, 문어발식 사업 확장, 골목상권 진출,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강요 등으로 시장 질서가 문란해지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해 공동체에 큰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여야의 접근 자세에는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의 재벌 공격 이면에는 일종의 ‘배신감’이 깔려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감세 혜택 등 ‘기업 프렌들리’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그렇게 밀어줬는데, 경제 성장의 과실을 가득 안게 된 재벌이 정작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에는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대표적 경제 논리라고 할 수 있는 ‘낙수(落水) 효과’(트리클다운 효과)도 기대에 못 미쳐 중산층과 서민이 이 대통령과 여권에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다.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은 “바닥의 민심은 정부가 친대기업 정책을 실시했는데도 그 성장의 과실이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여권의 실정을 부각시키려는 차원에서 대기업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리는 측면이 있다. 현 정권이 재벌 특혜 정책을 집중적으로 밀어붙였으나 중소기업과 중소자영업자들의 일방적 희생만 야기하고 실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야권통합 또는 연대 차원에서 접근하는 측면도 있는데, 특히 한진중공업 사태가 그렇다.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고문은 “한진중공업 사태에 야권이 힘을 모아 성과를 만들어 낸다면 그 어떤 말보다 신뢰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야권연대의 중대 갈림길”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공히 대기업 비판의 근저에는 ‘표심’ 확보라는 뚜렷한 의도가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중산층과 서민 표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비판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부자에게 자유를, 서민에게 기회를’,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함께 잘 사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대기업 편들기로 비치는 정책 기조를 바꾸고, 집권 여당이 달라졌다는 인식을 주지 않는 한 내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재계는 내심 불만이 폭발 직전이지만, 정치권의 그런 속사정을 감안해 일일이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전경련 한 간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기업이 해외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려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파이’가 커지고 소득격차도 많이 해소됐다”며 “모 의원을 만나서 자꾸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대기업의 기여를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더라. 정치적 목적으로 공격하는데 사실 재계로서는 뾰족한 대응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경제단체가 정치적 풍향계만 바라보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선거만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대기업 친화정책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전 “나는 최초로 재벌 개혁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던 사례도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김호경 김나래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