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의 아름다운 이름! 할아버지… 두딸에 일할기회 주려 老年 반납 외손주 2명 길러내
입력 2011-07-21 21:22
그 세대 모든 아빠들이 그렇듯 정석희(68·서울 염창동)씨도 네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27년간 은행원으로, 지점장으로 그는 열심히 일했다.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취해서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1971∼79년에 2∼3년 간격으로 줄줄이 낳은 1남3녀의 육아는 온전히 아내 몫이었다. 정씨는 “우리 세대 젊은 남자의 생활이라는 게 대개 그랬다”고 말했다. 그가 노년의 여유를 통째로 반납하고 두 손자를 키우게 된 데는 어떤 후회 혹은 미안함 같은 게 깔려 있었다.
2006년 11월과 이듬해 1월 대학강사인 둘째딸과 중앙부처 공무원인 큰딸이 50일 간격으로 아들을 낳았다. 손자 도헌과 경모였다. 아내와 함께 두 손자를 키우기로 결심한 건 순전히 “딸들에 대한 애프터서비스 차원”이라고 했다. 손자 돌보기는 물려줄 재력도, 권력도 없는 아비가 딸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았다. 친구들은 “몸만 축난다”며 말렸지만 부부는 강행했다.
처음 30개월간은 24시간을 온전히 두 손자와 함께 부대꼈다. 갓난아기 둘, 그것도 사내애를 두 노인이 감당하자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낮잠도, 화장실도, 산책도 번갈아 해야 했다. 우유를 먹이고, 똥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켰다. 애 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정씨는 “힘들고 지칠 때는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애 키우면 늙는다는데 맞는 말이다. 두 노인네가 팍 늙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딸들에게서 일할 기회를 뺏고 싶지는 않았다. “회식이 있는데 일찍 가겠다”는 전화가 걸려올 때 부부는 한사코 “그런 자리는 빠지면 안 된다”고 말렸다. “제가 직원들 다스려봐서 압니다. 애 가진 엄마들이 알게 모르게 직장에서 불이익을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딸들은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사회에서 밀려나요. 그걸 내가 아니까.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가련해서. 사회가 못해주면 부모라도 도와줘야 하잖아요.”
힘은 들었지만 시간과 함께 보상도 커졌다. 어린이집에서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손자를 안을 때 정씨 부부는 허리 아픈 것도 잠 설친 것도 모두 잊었다. “한 인간이 나를 이렇게 좋아하고 기댄다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몰라요. 그걸 어떤 오락으로 대신하나요? 외손자 둘을 돌보는 지난 몇 년은 노년에 뜻하지 않게 찾아온 파릇한 봄이었어요.”
유모차 끄는 할아버지의 인기에 대해서도 말했다. 놀이터에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젊은 엄마들은 “몇 개월이에요?”라며 말을 걸었다. 정씨는 “평생 이렇게 많은 여성들에게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터를 두고 이 나라의 그 많은 할아버지들은 어디 가 계시느냐”며 웃었다. 외할아버지 정씨의 손자 키우기는 최근 출간된 육아 에세이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황소자리)에 담겼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