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속 오랜 연단 끝에 새 하얗게 소금의 길을 회상하다… ‘소금꽃이 핀다’ 전시회
입력 2011-07-21 18:26
해병대 총기난사, 자살, 폭력…. 끊이지 않는 사회병리 현상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그럴 수록 희망을 찾는 이들의 기도도 간절하다. 하지만 희망 찾기가 쉽지 않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눅 14:34).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와 탄식이 오늘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20일부터 서울 삼청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금꽃이 핀다’ 전시회를 찾아 이 시대 ‘소금’의 메시지를 캐내봤다.
짜고 텁텁한 바닷물이 무색투명의 정육면체 소금이 되기까지는 꼬박 25일이 걸린다. 바닷물은 8∼10 단계로 이뤄진 저수지, 증발지를 거의 매일 옮겨진다. 과정이 바뀌면서 염전 바닥도 토판, 옹기판, 타일판, 장판으로 교체된다. 장판으로 이뤄진 결정지 면적은 전체 염전 면적의 20%밖에 안된다. 불순물을 다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염분 2∼3도의 바닷물은 마침내 이 결정지에서 염분 28도의 소금으로 바뀐다.
소금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 스물다섯 날의 하루하루, 바닷물은 갯벌과 섞였다가 헤어지고, 햇볕에 몸을 태우고, 바람의 뭇매를 받아 안고, 염부(鹽夫)의 매질을 감내해야만 한다. 바닷물 갯벌 햇볕 바람 땀은 소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요즘처럼 볕이 강한 날은 소금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결정지가 끝이 아니다. 소금은 캄캄한 창고로 옮겨져 5∼6개월간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물기는 빠지고 짠맛은 더 부드러워진다. “바람이 적어서 물이 흔들리지 않고 햇볕 좋아야 알 굵은 소금이 온단다. 불땀 좋은 솥 안의 물처럼 뙤약볕 아래 끓어올라 용도리치는 물결들 묵묵히 잠재워야 소금이 온단다” (김윤이 시 ‘소금이 온다’ 중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은 인간의 중요한 일상에 깃들어 있다. 비누 화장지 신문지 TV 모니터 거울 양복 신발 수영장 운동장 소독약, 심지어 탄약에도 쓰인다. 일제가 인천과 전남 지방에 대규모 염전을 만들었던 것도 국내 천일염의 우수성을 일찍이 간파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혈액이나 세포에도 0.9%의 소금이 채우고 있다. 소금은 땅속이나 들보, 기둥 사이에 묻기도 했다. 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바람에서지만 실제로는 집을 떠받치는 기둥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전시를 둘러본 이정석(33·서울 삼일교회)씨는 “소금이 이런 길고 세밀한 과정을 거쳐서 생산되는 줄은 몰랐다”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왜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민속박물관 정연학 학예연구원은 “이번 전시회가 그리스도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굳이 종교를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소금의 성경적 의미를 깨달을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9월 13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는 소금의 생성방법, 용도, 역사, 세계의 소금, 소금 만들기 체험 등을 담고 있다(02-3704-3152).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