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내용 담은 일기장 공개한 느낌”… 첫 산문집 펴낸 은희경

입력 2011-07-21 17:42


등단 15년 차의 중견 소설가 은희경(52)이 첫 산문집 ‘생각들의 일요일들’(도서출판 달)을 냈다. 일주일 기준으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소설을, 나머지 하루인 일요일엔 산문을 쓰며 경직된 어깨를 푼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제목이다.

21일 서울 안국동에서 만난 은희경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과거 소설책을 냈을 때 독자들이 내릴 심판(?)을 의식한 나머지 경직될 수밖에 없었던 표정에서 풀려나 마치 바캉스를 다녀온 듯 가뿐했다. “사석에서 하는 편한 말들, 어느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 하는 말 같은 것, 자발적인 누수의 언어들을 묶어 보았어요. 때로는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처럼 망설여졌지만 한편으로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냈지요.”

산문집 내용은 그가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일일 연재하면서 인터넷 독자들과 주고받은 댓글, 지난 3월 이후 새롭게 접한 트위터에서 작성한 글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그날그날의 감정 상태와 작가 사생활이 진하고 생생하게 묻어난다. 예컨대 ‘그리하여 우리가 앉아 있던 골목 안의 작은 사케집’이란 제목의 산문을 읽어보자.

“어제는 종일 흐렸지요. 마음이 가라앉고 글도 잘 써지지 않았어요. 밤 산책을 하면서 가로등 불빛 아래 날리는 희미한 눈발을 만났구요. 세수하고 침대에서 책을 보다가 후배의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 밤눈 볼까? 후배는 집으로 가던 택시를 돌리고, 나는 벌떡 일어나 모자와 코트를 걸치고. 그리하여 우리가 앉아 있던 골목 안 작은 사케집.”(28쪽)

‘나라는 사람’의 글도 있다. “나는 헌신적이었던 적이 없다. 몰두할 뿐이다. 내 마음 내킬 때까지만. 나는 내가 몰두할 때 감각이 예민해지고 에너지가 생기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즐긴다. 나 자신을 갖고 노는 것. 누구도 상처주지 않았다고 믿지만. 작별 이후 내가 게으른 것으로 너의 부재를 실감한다.”(289쪽)

장편 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긴 호흡의 집필 기간 중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소한 일을 했는지, 손바닥 보듯 명쾌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지난해 그가 글감을 끌고 다녔던 서울의 연희창작촌, 경기도 일산 작업실,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 그리고 잠시 머물다 온 독일과 미국 시애틀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도 허투루 넘기기 아깝다.

그에게 트위터는 어떤 느낌일까. 은씨는 “트위터를 해보니까 밤에 혼자 일할 때 누군가 함께 깨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매력적이었다”며 “트위터를 통해 말 속에 사람이 보이는 훈련을 많이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그가 일방적인 트위터 예찬론자는 아니다. “어디까지 나를 노출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하고픈 말을 많이 깎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깎다 보니 말이 의도와는 달리 둥글둥글해지더군요.”

은희경의 사생활에 어떤 비밀의 시간이 고여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산문집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