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벌의 시대, 북벌 주창하다 유언조차 못 남긴 윤휴
입력 2011-07-21 18:36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덕일/다산초당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왕 독살사건’ 등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역사평론가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그의 주류 역사학계 비판은 한가하지 않다. 몇 백년 전 사건을 논할 때도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는 활동가의 전투력을 뽐낸다. 그만큼 사활을 걸고 논쟁한다.
이런 저돌성의 바탕에는 절박한 역사인식이 깔렸다. 이 소장은 현재 대한민국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면 원인은 조선 중기 이후 교조화된 주자학이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주범은 노론이다. 이들은 학문이 주자의 해석으로 완전무결해졌다고 믿었다. 이제 유학자의 할 일이란 주자의 해석을 곱씹고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유교를 주자학의 좁은 틀에 가둔 채 왕을 들러리로 만들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가 됐고 광복 이후에도 주류로 살아남았다. 따라서 이 소장이 학계에 남은 일제 식민사관을 말할 때 그것은 과거 얘기를 넘어서 치열한 정치투쟁이 된다.
이 소장이 이번에는 비극적 최후를 맞은 조선 숙종 때 남인 정치가이자 유학자 백호(白湖) 윤휴(尹鐸?617∼1680)의 삶을 다뤘다. 대중적 인물이 아니어서 잠시 의아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왜 윤휴인지 이해가 된다. 과거를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살다 58세에 출사를 결심한 윤휴는 북벌과 호패법 폐지 등 사회 개혁을 주장하다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형당했다.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노론 영수 송시열의 대척점에 선 비운의 개혁파. 그간 해온 주장의 연장선에서 윤휴는 가장 적절한 소재인 셈이다.
이 소장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왜 윤휴인가에 대해 “10여년 전 한 월간지 기획위원으로 일할 때 후손이 아직도 윤휴에 대해 말하길 꺼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300년 전 사건조차 피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때 윤휴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책은 서인 정권이 주장해온 북벌론의 허구성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명나라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광해군을 내몰고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들에게 북벌은 존재의 명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효종에서 현종, 숙종으로 이어지는 서인 집권기에 북벌을 말하는 사대부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윤휴가 그토록 처참한 최후를 맞은 건 그가 북벌을 진심으로 믿고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윤휴의 삶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사약을 날랐던 금부도사는 유언을 남기고 싶다는 윤휴의 청마저 거절했다. 마지막 말도 거절당한 것이다. 이 소장의 말처럼 침묵은 언젠가는 깨지게 마련이다. 그는 “최근 여러 사람이 윤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며 “증오 시대의 유산은 청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