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21세기 지구인 식탁, 그래도 한결같이 웃는다…왜냐고?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입력 2011-07-21 18:35


칼로리 플래닛/피터 멘젤·페이스 달뤼시오 / 윌북

기차역에 사는 방글라데시의 12세 가출 소년 알라민 하산. 첫 열차로 도착한 승객의 가방을 택시 정류장까지 나르고 동전 몇 개를 확보했다. 운이 좋았다. 오늘 아침은 굶지 않아도 좋았다. 그가 역 바닥에 하루치 식량을 늘어놓았다. 롤빵 한 개, 홍차 두 잔, 흰 쌀밥 위에 채소 카레를 끼얹은 덮밥 두 접시, 그리고 담배 다섯 개비. 거리의 진수성찬은 그가 하루 종일 동료 짐꾼들과 주먹다짐하며 생계를 꾸려갈 1400㎉의 에너지를 제공해줄 터였다.

음식을 먹는 건 에너지를 얻는 행위이다. 빵과 밥은 잘게 부서져 분자 상태로 혈액에 흡수된다. 그 빵과 밥을 위해 인간은 하루를 산다. 인간이 에너지를 몸속에 넣고 배설하는 반복적 활동으로 생존한다는 이 단순한 사실은 삶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는다는 것, 하루에 얼마만큼의 식료품을 소비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삶을 얼마나 단단히 옭죄고 있는가. 그래서 누군가의 식탁을 엿보는 건 놀라운 관찰 행위가 된다.

환경 및 과학 분야 사진 저널리스트 피터 멘젤과 그의 아내이자 TV 뉴스 프로듀서 출신의 저술가 페이스 달뤼시오가 함께 제작한 ‘칼로리 플래닛’은 개인의 하루 식단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은 포토 논픽션이자 요리 다큐멘터리이다. 세계 30개국, 미국 12개 주를 돌며 80명의 사람을 만나 그가 먹어치우는 음식들을 요리된 상태 그대로 한 자리에 모아 주인공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떤 잣대로도 평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사례들을 모아놓고 보니 21세기 어느 날 지구인의 하루 식단표가 완성됐다.

사진과 함께 음식 목록, 주인공 일상도 소개됐다. 당연한 얘기다. 미국 전쟁(베트남에서는 베트남전을 이렇게 부른다) 상이군인의 식생활은 그가 참전군인이고 세발 모터 카트를 운행할 수 있는 특별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분리될 수 없다. 덕분에 쌀국수와 돼지고기 스튜, 청어튀김, 돼지 간 등 2100㎉의 음식을 풍족하게 먹는다. 묽은 곡식 죽과 찐 밀가루 만두, 쇠고기 육수로 하루 고작 900㎉를 섭취하는 보츠와나의 간병인. 그녀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건 HIV 항 레트로 바이러스 약이다. 알약 네 알이 없다면 그녀 아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후대 역사학자는 현대 인류의 삶을 말할 때 ‘섭취 열량과 활동량의 극단적 불균형’을 지적할 게 틀림없다. 80명의 하루 식단을 살피다 보면, 투입과 배출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너무 많이 먹어 걱정인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인이다.

175.3㎝, 135.6㎏의 15세 미국 여고생 맥켄지 울프슨은 체중 감량 캠프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침 식사로는 사과 팬케이크 2장과 칠면조 소시지 2개, 무지방 우유, 오렌지 주스를 먹는다. 점심은 샌드위치 샐러리 당근 샐러드, 저녁으로는 닭고기 샐러드 파스타 과일펀치가 준비돼 있다. 여기에 간식으로 사과 초콜릿푸딩 프레첼까지 총 1700㎉가 허락된다. 평소 식사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조만간 비만 수술을 할 예정인 미국의 전직 스쿨버스 운전사 릭 범가드너도 곡물 베이글과 브로콜리, 아이스티로 구성된 1600㎉의 다이어트 하루 식단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예전이라면 한 끼로도 부족한 양. 그는 “과거에는 이걸 다 먹고 추가로 닭 3마리의 가슴살, 감자, 그레이비, 비스킷까지 먹었다”고 고백했다. 과식은 비만을 낳았고 비만은 릭에게서 직장을 앗아갔다.

쇼핑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20대 미국 여성 티파니 화이트헤드의 하루는 버거킹 치킨 프라이와 프렌치프라이, 닥터 페퍼로 시작한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양상추가 가득 든 시저 랩 샌드위치와 과일 스무디를 먹으려면 한 끼에 8달러는 투자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버는 그녀에게는 벅찬 가격이다. 그래서 발길은 또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한다.

모두가 많이 먹어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케냐 마사이족 목축인 눌키사루니 타라콰이는 가뭄으로 가축을 대부분 잃어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못한다. 우갈리(옥수수가루 죽) 400g과 바나나 1개, 우유 59㎖와 설탕 2큰술을 넣은 홍차 2잔이 그녀가 하루 종일 먹는 음식이다. 총 800㎉. 그녀 반대편에는 병적인 간식 중독증 환자 질 맥티그가 있다. 영국 런던의 학교 도우미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하루에 4개의 샌드위치와 비스킷, 소시지, 초코바, 초콜릿 케이크, 초콜립 칩까지 무려 1만2300㎉를 집어 삼킨다. 두 사람 모두 그대로는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하다. 800㎉보다 많고 1만2300㎉보다 훨씬 적은 중간지대 어딘가에서 타협은 이뤄져야 했다.

사람은 제 입으로 들어갈 음식 앞에서 오래 가식적일 수 없는 법이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수줍어하고 얼마쯤 자랑스러워했고 금세 긴장을 풀었다. 그렇게 70억 세계인의 삶을 한 권의 책에 통째로 복사해냈으니 저자들이 진정 영리하다 하겠다. 김승진, 홍은택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