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창우 (17) 기독인·무슬림 사이에 진료소를 세우다
입력 2011-07-21 20:36
2004년 8월 우리는 광림교회 산하 광림의료선교회와 함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의료선교를 다녀왔다. 그리고 1개월 만에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파키스탄은 선교사로 활동 중인 친형이 있는 곳이었다. 형님은 1996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파송을 받고 선한사마리아병원 건립 과정에 관여했다. 부지 확보부터 건물 건립, 5∼6년을 현지에서 운영했고 한국에서 안식년을 포기한 채 다시 파키스탄 K시로 들어가 학교 건립에 주력했다. 형은 인천성산교회가 지원한 5만 달러를 종자돈으로 해서 16만 달러 이상이 투입된 학교건립에 매달렸다.
어느 날 형님으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창우야, 여기는 무슬림과 크리스천이 공존하는 곳인데 양쪽 마을이 만나는 곳에 진료소를 세우면 복음전파에 더없이 좋겠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료 혜택을 줬으면 좋겠고.”
“좋습니다. 그럼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학교 내에 공간을 내줄 테니 그곳에 무료진료소를 세워줬으면 좋겠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선 학교에 대한 평판은 무척 좋다. 교육과 의료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도 무료진료소가 단발적인 의료선교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맞다. 이곳에서 천민계층에 속하는 무슬림은 교육과 의료혜택을 못 본단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달래준다면 복음 앞에 훨씬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될 거야.”
“그렇다면 형님은 초·중·고등학교와 직업훈련원, 병원이라는 복음의 삼각구도를 통해 파키스탄을 변화시키려는 계획이군요.”
“그래, 그게 내가 꿈꾸는 선교 모델이야.”
우리는 무료진료소 건립에 필요한 적지 않은 비용을 가방에 담아 9월 26일 파키스탄 K시로 향했다. 훌륭한 의료선교 대원이신 아버지와 병원 기획이사로 일하게 된 아내 김정신 권사, 간호사 등 10명이 동행했다. 우리는 그곳에 무료진료소를 만들고 ‘파키스탄 선한목자병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형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료보험 증서를 만들어 배부했다. 그 증서를 갖고 있으면 진료소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 학교는 경쟁률이 7대 1을 넘을 정도로 지역에서 평판이 좋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과정을 운영 중인데 전교생이 400명가량 된다. 정부에서도 교육부 허가를 내줬다.
무료진료소에도 현지인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으며, 주 2회 치료를 한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성산학교 보건교육까지 책임지고 있다. 한국의 선한목자병원은 병원 운영에 필요한 약값과 간호사 월급, 의사 방문비용 정도만으로 수천 명의 지역주민에게 의료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서울의 광림교회는 의료선교회가 주기적으로 그곳에서 무료진료 활동을 펼친다. 청년선교국도 그곳에서 어린이들을 모아 여름성경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라오스에 이어 파키스탄에 두 번째 무료진료소를 세우면서 우리 병원은 의료선교의 확신을 갖게 됐다. 그것은 약만 제대로 나눠줘도 예방 차원에서 60∼70%의 질병이 치료되더라는 것이다. 의사가 1년에 한 번 선교지를 방문해 하루 종일 수술을 하는 것보다 염증이 생겼을 때 간단한 약을 처방해주는 게 선교지 주민 입장에서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선교지 현실에 맞는 3단계 전략을 희미하게 정립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기적인 선교만 다닌 것은 아니다. 2005년 1월엔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아체주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하나님의 놀라운 준비하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