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유치원 국회’

입력 2011-07-21 18:07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980년대 후반 어느 아침나절이었다. 그 무렵 8살이었던 나는 독감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심심하니까 텔레비전이라도 보라며 TV 시청을 허락하셨다.

TV를 켜니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토론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제대로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다만 내 관심을 잡아끈 것은 국회의원들의 행동이 토론시간의 우리 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텔레비전 속의 국회의원들은 남이 말하는데 끼어들고 야유하고 욕하고 거친 몸짓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방송을 본 후 나는 세상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됐다. 그때까지 어른들은 당연히 초등학생보다 ‘어른스럽게’ 행동한다고 믿었는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이지 진정 어른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중에 커서 보니 독일 정치가들만 그렇게 유치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사정도 그리 나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독일 정치가들은 그나마 점잖은 축에 속했다.

한국 국회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회의장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점거농성을 하는가 하면 미디어법 처리 때는 카메라 앞에서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독일 국회를 초등학교와 비교할 수 있다면 한국 국회는 유치원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건 여당, 야당을 불문하고 똑같이 유치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싸움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는 암묵적 동의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정치가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인이다. 말하자면 국민의 일을 대신하는 직원과 같다. 국민을 대신해서 토론하고 협상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다. 즉, 바리케이드를 치고 점거농성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내는 국회의원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하고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찾으라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서 소리나 지르고 싸움질하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국회에서 소리 지르고 싸우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자신들의 유치한 행동이 카메라에 찍히는 것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한국보다 북한 관련 기사를 자주 다루는 유럽 언론에서도 2년 전 한국 국회에서 일어난 난투극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시 독일에서는 주요 일간지뿐 아니라 소규모 지역신문들까지 한국의 국회 난투극 기사를 국제면에 실었다.

정치가들의 유아적 행동으로 인한 한국의 국가 이미지 손상은 엄청나다. 그런 기사와 동영상이 세계를 돌면서 한국은 ‘성숙하지 못한 사회’,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한 나라’로 비치기 때문이다. 우스운 것은 이렇게 국가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사람들이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승인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행동거지를 바로잡는다면 국가 이미지 개선은 공짜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