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일단 도망 치세요”… 해파리 전문가 국립수산과학원 유원득 박사의 퇴치법
입력 2011-07-21 18:07
길쭉한 풍선 같은 투명한 물체가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저게 뭐지?’ 손을 뻗은 순간 따끔한 충격이 온몸을 휘감았다. 피서객 A씨(20)는 급히 구조돼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가슴 통증이 멎질 않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지난 17일 제주 서귀포 중문색달해변을 찾은 A씨는 이틀 동안 병원 침대에 드러누워 아까운 휴가를 날렸다.
A씨를 공격한 범인은 지구상에서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생긴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채 물 위를 떠다니는 해파리다. 몸의 약 97%가 물로 이뤄져 있고 하늘거리는 몸체는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치명적인 무기를 숨기고 있는 바다의 독화(毒花).
따뜻한 열대지방 바다에 주로 서식하던 해파리가 최근 수년간 한반도 인근 해역에 출몰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피서객을 위협할 뿐 아니라 어민들의 생계를 망쳐놓고 있다.
부산 소방본부에 따르면 부산지역 해수욕장에서 수거한 해파리 개체 수는 2007년 779마리에서 2009년 2493마리, 지난해 6838마리로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었다. 부산소방본부가 피서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파리 제거용 뜰채를 늘리고 순찰을 강화했다. 수산과학원은 2006∼2008년 해파리의 경제적 피해를 연간 1522억∼3049억원(수산업 피해 763∼2290억원, 원자력발전소 냉각수 취수구 유입 등 국가기간산업 피해 589억원, 관광업 피해 170억원)으로 추산했다.
국내 해파리 전문가 윤원득(48) 박사를 지난 19일 부산의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만나 해파리 퇴치법을 물었다.
미스터리 생물 해파리
“우리는 해파리라는 생물에 대해서 10%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생물 중에 이렇게까지 베일에 싸인 생물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해파리는 기존 지식으로 해석할 수 없는 특성이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해파리냉채를 즐겨 먹고, 초등학생도 해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그러나 정작 해파리 자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다. 아직까지 인류에게 해파리는 미스터리한 생물이다.
해파리는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해팔어(海八魚)’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근해에 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해파리가 왜 나타나는지, 어디서 태어나 어떤 경로로 유입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파리 연구자는 윤 박사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50여명 정도라서 축적된 지식도 많지 않은 상태다.
해파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유는 실험하기 어려운 생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양시스템이 다른 해양생물과 완전히 다르다.
“보통 해양생물을 기를 땐 공기방울을 투입시켜 용존산소를 보존하는데, 해파리는 이랬다간 바로 죽습니다. 공기방울이 안 나면서도 용존산소가 녹아들게끔 하는 시스템 만드는 데도 한참 걸렸죠. 예전에 크릴새우를 연구한 적이 있는데 그보다 100배는 어렵네요.”
해파리와의 싸움, 그 성과들
우리나라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문제아는 보름달물해파리와 노무라입깃해파리다.
보름달물해파리는 20∼30㎝ 크기에 짧은 촉수가 우산 가장자리에 많이 나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주로 시화호, 새만금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놈의 퇴치법은 간단하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락스’ 1ℓ를 2∼3t 물에 풀어 성체 전 단계인 ‘폴립’ 상태의 해파리에 뿌려주면 소멸된다. 락스 성분인 차아염소산나트륨(NaClO)은 자연분해가 매우 빨라 환경오염 염려도 없다.
“3∼4년 정도 꾸준히 폴립을 제거하면 보름달물해파리는 현재의 10∼20% 정도로 줄어들 겁니다.”
이 작전의 핵심은 성체로 자라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성체 해파리에 2만5000볼트의 전기로 공격해 봐도 효과가 없다. 레이저를 쏴도 끄떡없다. 윤 박사가 실험실에서 해파리에 레이저를 쏘았더니 레이저 맞은 자리에 구멍이 났을 뿐 몇 시간 지나니까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유히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어민의 주적이다. 최대 크기 2m, 무게 200㎏에 달하는 이 해파리는 그 육중한 무게로 그물을 찢어버린다. 촉수는 독성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폴립 서식지를 찾지 못했다. “중국의 양쯔강 하류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측은 하고 있는데, 중국 측이 자신들 영해에 대한 조사를 일절 불허하고 있어서 조사가 힘듭니다.” 이 해파리의 피해를 견디다 못한 일본이 지난해부터 2년간 중국의 연구소에 예산을 줘서 폴립 서식지 조사를 맡겼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성과가 없다.
윤 박사가 제시한 퇴치법은 해파리 성체들이 우리나라 해역에 들어오기 전에 공해 상에서 해파리를 분쇄하기 위한 트롤 어선을 띄우는 것이다. 올해 계획은 잡혀 있지만 아직까지 발생량이 많지 않아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해파리 문제가 심각하다면 다 잡아먹으면 되지 않을까?
“80년대까지만 해도 먹었다고 합니다. 군산 등지에선 소금에 절여 먹거나 껍질만 벗겨서 먹었다는데 숙취해소 효과가 탁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워낙 맛이 없어요.” 현재 국내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해파리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100% 수입된다.
윤 박사는 해파리를 자원생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해파리의 수분을 제거한 뒤 부산물에서 화장품 원료인 콜라겐을 뽑아내는 연구를 진행했고 성과도 거뒀다. 촉수부분에서 천연물질, 신물질도 찾고 있다. 윤 박사는 어민이 해파리를 잡아오면 정부가 수거한 뒤 부산물을 뽑아내고 이를 기업에 판매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언제나 예산이 발목을 잡는다.
“연구 성과는 있는데 산업화 단계까진 못 갔어요. 산업화하려면 안정적인 원료 공급이 중요한데 해파리를 채집할 수 있는 기간은 1년 중 길어야 6개월이에요.”
철원 소년, 바다에 심취하다
윤 박사가 해파리를 처음 만난 건 2003년이었다. 서해 영종도에서 해양조사업무를 하던 중 노무라입깃해파리를 직접 보게 된 것.
“처음 서해안에 대량으로 나타난 게 이때였어요. 이런 크기의 생물이 이렇게나 많이 나타날 수 있나 싶더라고요.”
해양학자 윤 박사의 호기심은 이후 해파리에 집중됐다. 그러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떻게 배양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숱한 실패를 겪었다. 또 해파리를 채집하거나 인공수정을 시킬 때마다 여지없이 촉수공격이 들어온다. 촉수 공격에 벌겋게 부어오르는 팔뚝은 평범한 일상이다.
“심하면 촉수가 목을 친친 감기도 해요. 저는 해파리 공격에 익숙해진 편이지만 한 동료는 전기 감전된 것처럼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윤 박사 고향은 내륙 중의 내륙인 강원도 철원이다. 내륙소년의 인생은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해양학(oceanography)’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 결정됐다.
“바다를 연구한다는 이 학문에 완전히 반했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서울 대형서점에서 ‘오션 사이언스’라는 이 분야 최고 명저를 원서로 구해서 혼자 사전을 펴놓고 공부했다. 이후 해양학과가 있는 인하대로 진학했고, 이 분야 강국인 프랑스로 유학해 동물 플랑크톤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다 가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들
해파리 피해가 남의 일 같은가? 해파리는 바다로 휴가를 떠날 계획을 세운 당신도 노리고 있다. 만약 해파리에게 쏘였다면 구급대를 불러 도움을 청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구급대가 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법이 있다. 식초를 상처부위에 충분히 적셔주면 된다. 식초의 산성이 해파리 독성을 중화시켜 준다. 그러니 해수욕장으로 놀러갈 생각이라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식초 한 병 정도는 꼭 챙기자.
피부에 달라붙은 촉수는 손으로 건드리지 말고 핀셋으로 제거해야 한다. 핀셋이 없다면 나무젓가락을 써도 된다. 가능하다면 상처부위를 냉찜질하거나 열찜질해 주는 것이 좋다. 이것이 해파리 응급처치의 기본이다.
식초가 통하지 않는 놈들도 있다. 열대, 아열대 바다에 서식하며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에 가끔 출현하는 작은부레관해파리는 다른 해파리와 달리 산성이라서 식초를 썼다간 독이 더 활성화된다. 이 녀석은 크기가 5∼15㎝에 불과하지만 독은 치명적이다. “같은 종이라면 독성분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해파리는 그렇지 않아요. 아직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네요.”
지난 17일 서귀포 앞바다에서 A씨를 포함한 피서객 3명이 바로 이 해파리에 쏘였다. 20일에는 제주 협재해수욕장에 50마리가 나타났고 관광객 한 사람이 당했다. 해양경찰은 피해자가 발생한 즉시 해당 해수욕장의 출입을 통제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이 해파리에 쏘여 1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0년 전쯤에 해녀 한 사람이 이 해파리 때문에 사망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놈들이 나타나면 긴장합니다.” 윤 박사는 열흘 정도 제주도에 머물며 이 해파리를 관찰, 조사할 계획이다.
다행히 작은부레관해파리는 쉽게 눈에 띈다. 물 속을 부유하는 다른 해파리와 달리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어 수면 위로 둥둥 떠다닌다. 만약 이놈들을 본다면 절대로 건드리지 말고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부산=글·김도훈 기자, 사진=김태형 선임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