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영석] 참을 수 없는 유혹, 도청
입력 2011-07-20 19:23
‘몰래 듣기(도청·盜聽)’로 미디어제국이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KBS의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도청 의혹 사건이 진실 게임으로 비화되고 있다. 영국에선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오브더월드(NoW)’의 휴대전화 해킹 및 도청 사건이 ‘게이트’로까지 번지고 있다. 과거 도청 대상이었던 언론이 이제는 도청의 주체로 변질됐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응방식은 사뭇 다르다. KBS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은 없었다”며 침묵하고 있다. 반면 머독은 영국 일요신문 중 발행부수 1위였던 NoW를 폐간시킨 뒤 “죄송합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겠습니다”라는 사과 광고를 주요 일간지에 게재했다. 그리고 19일 영국 하원 도청 청문회에서 “오늘은 가장 부끄러운 날”이라고 토로했다.
도청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강대국 첩보전의 주요 수단으로 본격 활용됐다. 영국은 국내정보국(MI5), 소련은 군정보총국(GRU), 미국은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 등을 앞세워 도청 전쟁을 전개했다. 올 들어 미국이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수 있었던 것도 빈 라덴의 심복에 대한 유선 전화 도청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심지어 미 정보당국은 2001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보잉 전용기에 무려 27개 이상의 도청장치를 심을 정도로 도청을 적극 활용해 왔다.
그러나 도청이 국익을 위해서만 사용돼온 것은 아니었다. 도청의 대명사인 워터게이트 사건은 차치하고라도 혁신 정치를 주창했던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마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도청하라고 연방수사국(FBI)에 명령할 만큼 권력자들에게 도청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중앙정보부가 1961년 20명으로 구성된 과(課) 단위의 도청 조직을 운영하다 68년 60명 규모의 단(團) 급으로 확대해 70만명의 전화 가입자를 도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부 시절에도 법률적 근거 없이 국가안전기획부와 국군보안사, 검찰·경찰 등 국가기관을 도청에 총동원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모비딕’도 이 당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및 도청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92년 ‘초원복집’ 도청 사건을 계기로 통신비밀보호법이 만들어졌지만 도청은 멈춰지지 않았다. 국가권력자들의 요구와 정보기관의 충성심 경쟁이 빚어낸 결과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는 도청 전담 조직 미림팀을 운영했고, 김대중 정부에선 이동통신 도청 장비까지 직접 개발했다. 2005년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마저 “노무현 정권도 도청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을 정도다.
도청은 권력기관의 전유물이 아니다. 각종 공사 입찰 현장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구문이 돼버렸다. 2009년 11월에는 서울의 한 명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까지 도청기가 등장했다. 최근에 만난 한 대선후보의 참모는 대화 도중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기자를 향해 “설마 그걸로 녹음하는 건 아니지요”라며 씁쓸한 농담을 던졌다. 불신(不信)의 시대다.
KBS 도청 의혹 사건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같은 불신에 기름을 끼얹었다. 일반 국민들 역시 ‘언론마저 도청하는데’라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 시사주간지 설문조사 결과 국회 출입기자 80% 이상이 “KBS가 도청에 연루됐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10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여부를 따질 때가 아니라 공영방송의 위기를 논할 단계에까지 와 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KBS는 답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도청 방송’이 아닌 공영방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서다. 아울러 면책특권 뒤에 숨어 있는 한 국회의원도 과거 진실을 전달해온 방송인이다. 그에게 우리 사회는 침묵이 아닌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석 사회부 차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