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대책] 이젠 어디로 가나… “대책도 없이 내쫓다니” 체념·불안·분노
입력 2011-07-20 21:39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 휴가철을 맞아 몰려든 인파에 역사(驛舍)에서 밀려난 노숙인들은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서울시가 다음 달 1일부터 노숙인들을 서울역에서 몰아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노숙인들은 체념과 불안,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표출했다. 인근 상인과 행인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차라리 사고 치고 교도소 가겠다”=7개월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강모(52)씨는 “이게 말이 됩니까. 갈 곳이라도 마련해주고 내쫓아야지 차라리 사고 치고 한 번 더 (교도소에) 들어갔다 오고 말겠다”라고 말했다. 김모(43)씨도 “영등포역은 서울역보다 (노숙인들이) 더 바글바글해 갈 수 없다”면서 “서울역에서 자는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다 어떻게 내쫓는가”라고 말했다.
조직적으로 저항하겠다는 반응도 있었다. 3∼4명과 함께 라면을 먹던 라모(49)씨는 “사람을 모아서 항의할 것이고 나도 부딪칠 것”이라면서 “우리가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그냥 잠만 자고 앞에서 술 마신 정도밖에 더 있는가”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A씨(48)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하루 됐는데 어디로 가라는지 모르겠다”면서 “노숙인도 자존심이 있다. 우리가 돈 달라고 했는가. 강제로 쫓아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낮 시간대에는 20∼30명에 불과하지만, 오전 2시30분쯤 자러 오는 노숙인들이 몰리면 120명 정도가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다른 데로 가면 그만”=장소만 달라질 뿐 달라지는 것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서울역 부근에서 47년 동안 노숙 생활을 해왔다는 현모(72)씨는 “반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어디든 못 가겠는가. 내쫓으면 가긴 가야지. 항의해봐야 소용없을 거고 기대도 안 한다”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그늘에 홀로 앉아 라면을 먹고 있던 박모(79)씨는 “겨울보다야 낫지만 갑자기 날도 더운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소주만 먹다가 밖에서 죽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라며 탄식했다.
서울역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최모(65·여)씨는 “아무리 항의해도 들어주지 않는데 다른 데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PC방이나 만화방에서 잠을 자다가 돈이 없으면 서울역을 이용했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은 환영, 일부는 동정=상인들이 전하는 노숙인 피해사례는 적지 않았다. 여름에 상의를 벗고 다니는가 하면, 점포를 기웃거리면서 물건을 훔쳐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최다연(42·여)씨는 “노숙인들을 내쫓는 건 마음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서 “노숙인들이 많을 때는 서울역 절반이 그들이다. 외국인과 아이들 보기에도 좋지 않다”고 했다. 서울역 인근에서 도넛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23·여)씨는 “1개월 전에 매장 앞에 누워있어 나가 달라고 했더니 물병을 던지기도 했고, 도넛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면서 “솔직히 우리에게 해코지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난감할 때가 많았다”면서 이번 조치를 환영했다. 특히 음식점 주인들은 노숙인들 때문에 시식 코너를 운영할 수 없어 불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서울역 광장 주변 B아이스크림 점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정모(28)씨는 “인권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책도 없이 이런 날씨에 내쫓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말했다.
이도경 진삼열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