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8연승의 가치
입력 2011-07-20 17:50
시니어와 여류의 연승대항전이라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지지옥션배가 올해로 5회를 맞았다. 통산 전적 2대 2. 이번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로의 순간이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과는 달리 이상기류가 형성됐다. 지난 4회 때 입단과 동시에 후원사 시드를 받았던 최정 초단은 경험 부족과 큰 부담으로 첫판에 패해 너무 쉽게 탈락했다. 내용상으로도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완패를 당해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절치부심 끝에 이번에는 스스로 예선을 통과하고 여자대표 12명에 선발돼 첫 번째 주자로 등판했다. 한 해 동안 충암도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바둑에만 전념했고, 여자상비군 훈련을 통해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난 대회의 잔상이 남아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작된 대결. 초반은 지난해와 다름없이 불안하게 출발했다. 계속해서 불리한 바둑을 상대 실수로 이겨 운이 많이 따른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한 판 한 판 승수가 쌓여지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비의 판을 넘기더니 내쳐 6연승까지 달렸다. 서능욱 9단, 김종수 7단, 장수영 9단, 차민수 4단, 김동면 9단, 김동엽 9단 등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을 물리치면서 차곡차곡 승수를 쌓았다. 지금까지 지지옥션배의 최다연승은 1회 조훈현 9단의 6연승과 3회 안관욱 8단의 6연승이었다. 연승전 고비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만 15세의 어린 소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서봉수 9단과 오규철 9단마저 꺾으며 6연승의 기록을 넘어 8연승을 차지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시니어팀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것은 소녀의 성장 속도였다. 뒤로 가면 갈수록 처음에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가며 조금씩 강해지는 모습이 그대로 바둑판에 나타났다. 믿을 수 없는 흡입력이었다. 결국 9연승 길목에서 안관욱 8단에게 패하며 연승은 그쳤다. 1997년 서봉수 9단이 진로배 9연승의 신화를 보여준 기록에 한 판 부족한 결과다.
최정 초단은 광주 출신으로 일곱 살 때인 2002년 바둑을 시작해(오규철 9단에게 사사) 2005년 서울로 올라와 유창혁 9단의 제자가 됐다. 기풍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 불리던 스승을 그대로 빼닮아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연구생 시절도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신 1위를 차지하며 만 14세의 나이에 프로가 됐다.
이제 바둑 인생의 시작이다. 승부사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이지만 최정 초단은 첫 걸음부터 8연승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뤄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여자 기사가 남자 최정상급 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최정 초단은 많은 이들에게 꿈을 꾸게 한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소녀의 모습을.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