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
입력 2011-07-18 12:31
農夫와 農商人
목사인 나는 계(契)를 한다. ‘형제 계’라고, 어머니를 비롯한 7남매의 친족과, 어머니의 친정인 외가댁 일가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회포를 푸는 일종의 가족모임이다. 형제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 지방을 오가며 모이는데 금년이 춘천 차례였다. 대부분 토요일과 주일을 끼고 모이기 때문에 나는 토요일 오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가 잠깐 얼굴을 내밀곤 돌아온다. 고향(횡성)에서 더덕 농사를 짓는 외사촌 매형이 제일 먼저 와 계시다가 나를 보더니 반가워 하셨다. 매형은 자신을 ‘농부’라고 하지 않았다. 요즘 농사는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고 시장에서 파는 것과 같은 ‘商品’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과거에는 ‘농부(農夫)’였지만 지금은 정확하게 말해 ‘농상인(農商人)’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게 어디 농업뿐이랴. 지식이나 예술도, 차이는 있겠지만 비닐 재배의 농작물처럼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닌가? 그러므로 현대의 ‘사(士)’는 누구나 ‘사상인(士商人)’이다. 과거 ‘사농(士農)’은 여러모로 ‘공상(工商)’과 대립항을 만들어 내는 집합부호였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 사항은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배우느냐’였다. 이를테면, 농부가 ‘밭을 가는 일’과 ‘글을 읽는 것’을 동일시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공부나 수양을 쌓는 것을 ‘마음 밭을 간다’고 했다. 농사는 단순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였다.
그런 농사행위는 씨(種子)가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었다. 씨를 통해 인간의 나고 죽음, 재생과 연속 같은 실용 철학들을 배웠다. 농사는 곧 씨앗의 문화였다.
그러나 상업문화, 농상인의 삶에서는 ‘씨’를 통한 인생의 철학을 배우지 않는다. 요즘의 ‘농상(農商)’은 근본적으로 숫자문화다. 더덕 몇 평을 심을 때 몇 킬로그램을 캘 수 있는지. 그걸 팔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그러면 얼마의 액수가 남는 것인지 등등 온통 숫자의 연속이다. 더덕 ‘농상인(農商人)’인 외사촌 매형의 이야기는 끝없는 숫자의 나열이었다. 몇 킬로를 심었는데, 몇 톤을 캐고, 그걸 이 사람에게 저만큼 팔았을 때 이만큼 받았고, 저 사람에게 이만큼 팔았는데 암만암만 더 수입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상업문화에서는 숫자가 본능적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 놓고도 옛날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고추부터 보았다지만, 이제는 발가락이 5개인지, 손가락부터 세어 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게 요즘 세상이다. 그러니, 농부나 씨 뿌리는 비유로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는 군상들을 이해 못할 것도 없겠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눅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