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명문가 조건

입력 2011-07-19 19:33

조지훈 선생은 한양 조씨로 경북 영양 주실마을에 종가가 있다. 지난해 가을 이 주실마을에 지훈문학관이 들어선다기에 지인들 몇몇이 둘러 본 적이 있다. 학자가 많이 난다는 문필봉을 마주보는 호은종택(壺隱宗宅)이 바로 지훈 선생의 생가다. 마을 앞이 탁 트여 그냥 보기에도 좋은 터 같았다. 이 집안은 엄청나게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삼불차(三不借)라고 재물과 아들(養子), 글 등 3가지를 절대 빌리지 않는다고 한다. 올곧은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 지훈 선생의 지조론이 나올 만한 곳이라 생각됐다.

경주 반월성 터 부근에는 경주 최부자집 종가가 있다. 너른 마당에 잘 어울리는 기와집에서 사방 백리에 굶주린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을 남긴 이 집안의 전통이 느껴졌다. 경주 최부자집이 존경받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흉년에는 논을 사지 마라,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라,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마라는 등등의 가훈을 지켰다.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마지막엔 전 재산을 대학 세우는 데 보탰다. 한마디로 사회의 아픈 곳을 보듬는 책임 있는 행동을 보였다.

이 두 집안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적지 않은 명문가가 있다. 명문가를 다룬 책도 많다. 명문가만큼은 아니지만 셀 수 없을 정도다. 명문 집안의 내훈만 모은 책도 있다. 명문 집안의 내력을 다룬 책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명문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책에 따라 명문가의 조건이 다르긴 하다. 높은 벼슬을 했거나 돈이 많거나 아니면 유명인사이거나.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라고 한 사람 때문에 명문가가 된 경우도 있다.

명문가의 정의는 내리기 어렵다. 다만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한 집안이면 명문가에 해당한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집이면 명문가라 할 만할 것이다. 최부자집도 따지고 보면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현대판 명문가를 찾기 힘들다. 돈을 많이 가진 부자는 넘치지만 존경을 받는 부자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힘들게 번 돈을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와 정부로부터 받은 생활보조비를 모아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이리라. 사회적 부와 지위에 버금가는 헌신을 마다않는 신흥 명문가의 출현을 기대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