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원시림 보존할 ‘솔로몬의 지혜’는…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장 부지 가리왕산을 가다

입력 2011-07-19 18:02


가리왕산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환경성을 판명해 줄 리트머스 시험지로 떠올랐다. 알파인 활강 코스로 건설될 이 산의 정상 부근 넓은 구역은 고산성 희귀식물의 보고로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계획대로라면 보호구역 일부 훼손이 불가피하다. 올림픽을 환경친화적으로 치르기 위해 가까운 곳에 모든 경기장을 배치한다는 원칙을 채택한 것이 오히려 생태계 보전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솔로몬의 해법은 없는지 가리왕산을 찾아가 보았다.

◇유전자원보호림의 가치=눈에 띄는 어지간한 나무들은 거의 20m를 넘었다. 장마 끝에 불어난 계곡물은 이곳 특유의 풍혈(바위틈의 바람구멍)에서 나온 찬 바람 때문에 자욱한 물안개를 만들어낸다. 높이 15∼30m에 이르는 분비나무, 산겨릅나무, 까치박달, 거제수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꽃은 졌지만 싱싱한 초록색 넓은 잎의 도깨비부채, 흰색 초롱꽃이 등산객을 반겨준다. 긴 장마가 겨우 끝나가던 지난 15일 가리왕산을 찾았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북평면, 평창군 진부면에 걸쳐 있는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보호림으로 지정됐던 울창한 숲이다. 동행한 국립수목원 오승환 박사는 “해발 1000m 넘어서부터 주목, 분비나무, 전나무 등이 군락으로보다는 서로 뒤섞여 나타난다는 점에서 가리왕산은 우리나라 다른 고산지대와 다른 특이한 임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가리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해발 1000m 안팎의 등고선을 대체로 따라 가면서 건설된 임도를 경계로 그 위쪽 전부에 대해 지정돼 있다. 전체 면적은 2432㏊이고 정선군 쪽 면적이 1948㏊에 이른다. 상봉(정상)과 중봉 및 하봉 일대가 모두 산림청의 집중적 관리를 받고 있다. 그 가운데 중봉과 하봉에서 시작되는 북사면에 알파인스키 활강 경기장이 건설될 예정이다.

북평면 숙암리 숙암분교 앞에서 가리왕산 중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곳 일대가 1만8000여석의 관람석을 포함한 경기장 부대시설로 개발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중봉은 맑은 날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중봉은 숙암리 기점에서 불과 3.7㎞ 올라 온 지점이지만, 3시간30분이나 걸릴 정도로 가파른 코스다.

등산로를 우회해서 유전자원보호림 경계까지 이어지는 숙암리 임도를 따라 갔다. 차창 밖으로 자작나무 및 신갈나무 군락과 낙엽송 조림지가 보였다. 이곳 신갈나무 숲은 환경부 기준 녹지자연도 9등급의 절대보존지역이다. 산개벚지나무 군락도 보였다. 흰색꽃은 이미 졌지만, 새들의 먹이인 까만 열매가 달렸다. 말나리, 노랑물봉선, 개망초, 큰까치수염 등 여름꽃이 반겨줬다. 오 박사는 “꽃이 귀한 계절이지만 한반도 특산종이나 희귀식물이 적지 않아 지금은 참좁쌀풀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원보호림 경계선 임도를 따라 스키장 건설예정 부지 경계에 들어섰다. 가래나무, 층층나무, 거제수, 호랑버드나무, 산뽕나무가 보였다. 산림청 정선국유림관리소 황형남 보호관리팀장은 산뽕잎이 뜯어먹힌 흔적을 보고는 “노루의 짓”이라며 “1000m 밑으로는 고라니, 위로는 노루가 산다”고 말했다. 임도를 따라 1m 남짓 가다 보니 스키장 예정 부지가 끝나는 곳이었다. 오 박사가 쥐방울덩굴과의 희귀식물 등칡을 가리키면서 “꽃이 색소폰 모양으로 핀다”고 말했다.

임도를 따라 다시 장구목이골 쪽으로 가니 정상으로 향하는 네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1.2㎞) 초입에는 직경 60㎝의 주목, 눈측백나무, 만병초, 땃두릅, 분비나무, 거제수 등 고산지대 희귀식물이 널려 있다. 사스레나무로 추정되는 직경 55㎝의 노거목이 등산로 옆에 보였다. 오 박사는 “지리산에서는 같은 자작나무과라고 해도 해발고도에 따라 낮은 곳의 거제수와 높은 곳의 사스레나무가 분명히 구분되지만, 가리왕산에서는 같은 고도에 공존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리왕산은 식물분류학자에게 늘 곤혹스러운 도전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은 최근 성명서에서 “가리왕산은 원시성에 가까운 천연림으로 분비나무, 주목, 사스레나무, 거제수, 신갈나무, 마가목 등 우량한 희귀 수목들과 한계령풀, 금강제비꽃, 도깨비부채 등 희귀식물의 보고”라고 지적했다.

◇갈등의 씨앗, 동계 유니버시아드의 기시감=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시설부 손창환 팀장은 “북사면에 해발표고 900m 이상, 슬로프 길이 3.4㎞를 충족하는 곳으로는 가리왕산 중봉이 남한에서 유일하다”고 말했다. 유치위원회의 다른 관계자는 “애당초 30분 이내 이동범위 안에 모든 경기장을 배치한다는 원칙에 따라 강원도 안에서 국립공원을 제외하고는 대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당초 상봉(정상)을 대상지로 잡으려 했으나 주목 군락이 있어 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14년 대회 유치를 위해 경기장을 설계할 때에는 유전자원보호구역도 비켜서 경기장을 배치했지만 2008년 대회 유치가 무산되자 산림청은 가리왕산 유전자원보호림을 스키장 부지 일부까지 확대 지정했다“고 말했다.

유치위원회 측은 또한 전체 스키장 가운데 보호구역 면적(23.8㏊)은 전체 유전자원보호구역(2432㏊)의 약 1%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알파인스키 할강 경기장 시설이 그렇게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어서 전체 사업대상 예정지의 35%가 유전자원보호림인 것도 사실이다.

동계 유니버시아드 경기장으로 건설됐던 덕유산국립공원 내 스키장도 당장 훼손된 구역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회가 끝난 뒤 경기장 시설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골프장을 비롯한 레저단지가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관광객 증가에 따른 2차 환경 훼손이 우려되는 것이다.

정선=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