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청각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나온다
입력 2011-07-18 21:11
“저처럼 나중에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이야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기억이 있지만 이런 기억조차 없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문화관광해설사가 되기로 했어요.”
임은주(52·여)씨는 서울 종로구가 지난 3월부터 마련한 시·청각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양성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과정은 시·청각 장애인이 자신의 눈높이에서 같은 장애인들에게 종로구에 있는 북촌·고궁 등의 문화재 가이드 역할을 하는 교육과정이다.
처음엔 시각장애인 20명, 청각장애인 20명 등 40명을 선발해 시작했다. 하지만 필기시험과 현장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탈락자 또는 중도포기자가 생겨 현재는 11명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폭염이 기승을 부린 18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세종로 경복궁에서 실제 시·청각 장애인을 상대로 문화재를 소개하고 문화재 전문가 등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실기시험을 치렀다. 이를 포함한 종합점수를 토대로 이달 말쯤 문화관광해설사로 뽑힐지 결정된다.
임씨는 2005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오른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왼쪽눈으로만 흐릿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임씨는 “시각장애인에게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문화재를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예전 기억을 살리고 수도 없이 연습해 이제는 내비게이션처럼 설명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임씨는 근정전(勤政殿)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영제교(永齊橋)를 지나면서 “다리 귀퉁이 네 곳에 짐승상이 있는데 만져보세요. 코가 크고 무섭게 생긴 이유는 왕을 지키기 위해서랍니다”라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설명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된 뒤 제 자신도 계단이 많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고궁을 찾지 못했는데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홍수관(49)씨도 이날 실기평가를 치렀다.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으면서도 경복궁 곳곳을 설명하는 홍씨의 수화 동작은 끊이지 않았다. 홍씨는 근정전을 가리키며 “수화 단어에는 근정전을 뜻하는 별도의 말이 없어 백과사전과 인터넷을 뒤져 청각장애인들에게 설명해줄 쉬운 말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홍씨가 “근정전 앞 공간에는 조선시대 당상관 이상 VIP밖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하자 청각장애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농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문화재 답사를 경험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